해마다 5월 5일이 다가오면 도시는 분주해진다. 놀이공원은 인파로 넘치고, 상점에는 '어린이날 특가'가 내걸린다. 부모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나들이에 나서고, 어린이들은 연신 신나는 표정과 미소 가득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낸다. 참으로 따뜻하고 정겨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놓치고 있다. 국가는 어디에 서 있는가 ?

어린이날은 법정기념일이자 공휴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을 '가족 행사'로만 소비해 왔다. 독립을 기리는 '삼일절'과 주권 회복을 기념하는 '광복절'에는 대통령이 서고, 국가 의전이 갖추어진다. 그러나 미래를 기념하는 어린이날에는 정작 국가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는 이 날의 뿌리를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간다.
어린이날은 한 사람의 절박하고 간절한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바로 방정환 ! 우리가 '소파'라 부르는 인물이다. 그는 아이를 '애'가 아니라 '어린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중의 언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다. 1923년, '방정환'은 '색동회' 를 창립하고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으로 선언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어린이를 '시민'으로 호명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색동회'는 색동회관련 자료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어린이계의 노벨상인 '국제레고상'을 수상한 바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른 시기였다는 점이다. 유엔이 1954년 '세계 어린이의 날'을 권고하기 훨씬 이전, 한국은 이미 어린이 존엄을 기념일로 제도화했다. 우리는 세계가 어린이를 말하기 전에, 이미 어린이를 불러 세웠다. 그리하여 너무나도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세계 어린이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는 그 자부심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가.
어린이날은 상업적 소비의 날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이를 한 인간으로 인정한 세계 최초의 시민 선언에 가까운 날이며, 그 정신은 한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 보아 주시오.” 라고 했는데, 너무나도 가슴 뭉클하지 않은가? 이 말은 시대를 넘어 지금 이순간,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하다. 어린이를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 보라는 요청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린이날 하루만이라도, 대통령이 어린이 앞에 서서 이 나라의 약속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광화문이든 어디서든 좋다. 태극기 아래에서 어린이 대표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전국이 이를 지켜보는 정부 주관 중앙 기념식이 열린다면, 그 장면은 가슴벅차며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100여년전 방정환 선생이 초대이사장이었던 '색동회'가 세운 정신을 국가 차원에서 승화시키는 일이다. 과거를 기리는 날에는 국가가 서고, 미래를 기리는 날에는 물러서 있는 현실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어린이날은 가장 국경일다운 날이다. 국경일이 역사를 기리는 날이라면, 어린이날은 시간을 기리는 날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국가가 책임을 약속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어린이를 위해 기념일을 만든 나라다. 이제는 그 정신에 걸맞은 형식을 갖출 때다. 어린이날을 정부주관 '국가의식'으로 격상, 어린이들이 “국가가 나를 환영하고 있다” 고 느끼게 하자. 그것이 방정환의 헌신에 대한 오늘의 응답이 될 것이다.
홍대순 색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