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동남유럽에는 신규 풍력·태양광 발전단지가 들어서고, 발트 3국은 러시아 전력망에서 완전히 분리돼 유럽 전력망 체제로 전환했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초고압 송전망, 변압기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그리스 전력공기업 PPC에 1억7500만유로(약 2700억원)를 지원해 불가리아·그리스·루마니아에서 약 400㎿ 규모 풍력·태양광 발전사업을 추진한다고 지난 8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업이 완료되면 연간 760GWh 규모 청정전력이 생산되고 39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효과가 기대된다. 유럽연합(EU)은 인베스트EU를 통해 위험을 분담하며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뒷받침한다.
발트해 지역에서는 더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지난해 러시아와 벨라루스 중심 BRELL(벨라루스-러시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전력망에서 완전히 분리돼 유럽 전력계통과 동기화를 마쳤다. 구 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에너지 의존 구조를 끊고 유럽 전력시장에 완전히 편입된 것이다.
EU는 발트 3국의 에너지 안보 강화와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금까지 25억유로(약 4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송전망 확충과 대규모 ESS, 풍력·태양광 발전설비 구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업계는 두 사업을 단순한 재생에너지 투자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추진하는 '에너지 안보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와 전력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발전소 건설뿐 아니라 전력망과 저장설비, 계통 안정화 인프라까지 대규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연합(EU) 순방을 계기로 한국과 EU가 차관급 에너지 대화채널을 신설하고 재생에너지·에너지저장장치(ESS)·전력망 분야 협력을 본격화하며, 한국 기업들에 유럽시장 진출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수혜 분야로 꼽히는 ESS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저장과 계통 안정화를 위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전망 시장도 유망하다.
발트 3국의 유럽 전력망 편입 과정에서는 초고압 송전망과 변전설비 구축이 필수적이다. 동남유럽 역시 신규 재생에너지 단지와 전력 수요지를 연결하기 위한 전력망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전력, LS전선,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대한전선 등이 초고압 케이블과 변압기, 전력기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최근 유럽 전력망 투자 확대에 힘입어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의 해외 수주도 증가하는 추세다.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유럽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이제 발전설비 건설을 넘어 전력망과 ESS 중심의 전력시스템 구축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배터리, 송배전, 전력기기 분야와 정확히 맞물리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