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란 전쟁이 아직도 완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유럽 등 주요 석유 소비국들이 북·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산 석유 수입을 늘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최근 비중동산 원유 도입 확대와 수송 루트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미국산 원유 수입이 크게 늘어난 상태이며, 캐나다산 원유 수입을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299.5%), 유럽연합(EU)(36.4%) 등 주요국 상당수도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석유를 사들였으며, 미국산 석유 수입이 사실상 차단된 중국은 캐나다(104.5%)와 브라질(91.1%)산 원유를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가까이 늘려 수입했다.
중동 외 지역으로 원유 도입 다변화를 위해선 원유 성상 차이에 따른 설비 적합성, 고도화 설비 활용률, 제품 수율, 배럴당 정제 마진, 운송·보험 포함 실질 조달원가 등 다양한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나는 석유의 품질은 밀도에 따라 크게 경질유와 중질유로 나뉜다. API는 미국석유협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가 제정한 원유 비중(밀도)으로, 원유가 가벼울수록 비싸고 무거울수록 싸진다.
미국 석유협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비중이 33도 이상이면 경질유, 30~33도 까지는 중간유, 30도 미만은 중(重)질유로 나눈다. 흔히 3대 유종으로 손꼽히는 두바이유가 31도의 중간유, 브렌트유가 38도의 경질유, 미서부 텍사스유는 비중이 40도 이상 초경질유다. 캐나다산과 베네주엘라산 원유는 초중질유에 해당한다.
다양한 유종을 정제하는 정제설비는 투입하는 원유의 화학적 특징에 맞춰 다양하게 설계되며 결과적으로 생산된 석유제품 또한 다양하다. 경질유와 중질유에서 나오는 석유제품은 끓는점 차이로 구분되며, 경질유는 가벼운 연료제품이, 중질유는 무거운 잔사제품이 많이 생산된다.
경질유에서 나오는 석유제품으로는 액화석유가스(LPG), 휘발유(Gasoline), 나프타(Naphtha) 등이 있으며 중간유에서는 등유, 항공유, 경유, 그리고 중질유에서는 벙커유와 아스팔트 등이 나온다.
캐나다산 원유는 중동 중질유 대체재로 가격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이 가장 큰 장점이지만, 물류 비용과 설비 보강 비용이 주요 단점이다. 밴쿠버항에서 태평양으로 바로 아시아 수출이 가능해 중동산 보다 운송 기간이 단축될 수 있으나, 캐나다 내륙(앨버타) 생산 이후 수출을 위한 서부해안으로 운송하기 위한 인프라는 아직 제한적이다.
특히 밴쿠버항은 수심이 얕아 VLCC(200만 배럴급) 입항이 불가해, 파나막스급 소형 유조선만 사용해야 해서 운송비가 상승할 수 있다. 수출 인프라 제약으로 하루 최대 90만배럴로 한국이 원하는 만큼 수입이 어려울 수 있다.
한국 정유산업 기준에서 미국산 경질유와 캐나다산 중질유의 대량 도입은 단기 공급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존 설비 구조와 제품 믹스 특성상 손익 측면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유사 설비가 중동산 중질유 고도화에 맞춰져 있어 경질유와 캐나다산 중질유 투입 비중이 높아질수록 고도화 설비 활용률, 정제 마진, 제품 수율이 동시에 악화될 수 있다.
한국 정유업계는 '중동산 중질유+일부 경질유' 조합에 맞춘 고도화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고, 중질유 정제에 최적화되어 있는 만큼, 중동산 중질유, 미국·북해 경질유, 캐나다 중질유를 섞어 API·황함량을 공장 설계 값 주변으로 맞추면서 '정제마진이 최대가 되는 비율'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관세청과 우리 정부도 캐나다산 원유는 미국산 경질유 등과 블렌딩하면 중동산 중질유와 유사한 특성을 가져 우리 정유업계 설비 개조 없이도 처리할 수 있다고 보고, 관세·통관 측면에서 수입 촉진 방안을 내놓고 있다.
김연규 한양대 교수(국제대학원장) youn230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