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의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 굿닥터의 스토리
재수생 상담을 하다 보면, 의대 불합격 생기부를 만난다. 거의 수학과 과학으로 빼곡하다. 동아리는 '의학탐구반', 독서는 “인체의 신비”, 진로활동까지. 꽉 찬 것처럼 보였는데, 어딘가 비어 있었다. 성적이 아니라 서사가 없었다.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무엇이 그 마음을 만들었는지, 고등학교 3년이 어떻게 그 방향으로 쌓여왔는지. 그것이 생기부 안에 없었다.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지방 의대 지역인재전형까지. 생기부는 학교마다, 학생마다 달랐다. 하지만 합격한 학생들의 생기부에는 공통된 흐름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려 한다.
2. 학년별 로드맵, 애벌레에서 나비로
1학년: 씨앗을 심는 시기
1학년 생기부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문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진로활동에도, 자율활동에도, 세부 능력과 특기사항에도. 모두 의사다. 그런데 의지는 있는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이 시기에는 의사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탐색해야 한다. 통합과학 시간에 배운 세포 분열이 신기해서, 더 찾아봤다면, 그게 씨앗이다. 보건 뉴스를 읽다가 항생제 내성 문제를 알게 됐다면, 그게 씨앗이다. 중요한 것은 '거창한? 동기'가 아니라 '진짜 동기'다.
실제로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한 한 학생의 1학년까지의 생기부를 보면, 대단한 스펙이 없다. 예를 들면, 친구의 멘토가 된 경험이 담겨 있다. 통합과학 시간에 혈액 응고 원리를 탐구하며 천연 반창고 아이디어를 낸 기록 등이 있다. 화려하지 않다. 그런데 진심이 느껴진다.
![[박건영의 셀프 입시]⑫의대로 가는 생기부](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6/19/news-p.v1.20260619.78ba5b063dcb40a483e4cefb3a06d790_P1.png)
2학년: 척추를 세우는 시기
2학년은 학업과 탐구가 결합하는 시기다. 당연히 교과성적은 중요하다. 그리고 교과와 교과 사이의 연결이다. 예컨대 생명과학 수업에서 면역 반응을 배운 학생이, 화학 시간에 항원-항체 결합의 화학적 원리를 연결하고, 독서를 통해 자가면역 질환의 사회적 맥락까지 확장한다면, 그 생기부에는 입체감이 생긴다. 의학은 기본적으로 학제 간 학문이다. 대학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의대로 간 합격자의 생기부를 보면 2학년은 윤리적 사유가 처음 등장해야 하는 시기다. 안락사 논쟁, 의료 자원 배분, 의사와 환자의 관계. 이런 주제를 교과 탐구나 독서와 연결할 수 있다면, 생기부는 단순한 스펙 나열에서 벗어난다.
3학년: 형용사형 정체성을 완성하는 시기
'의사가 되고 싶다'는 명사형 희망으로는 부족하다. 3학년 생기부에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형용사형 정체성이 드러나야 한다. 공중보건 관점의 의사, 인수공통감염병을 연구하는 의사, 지역사회 의료 불평등을 해결하는 의사. 방향이 구체적일수록, 진정성이 느껴진다. 학생의 3년간의 활동이 그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면, 그 학생의 스토리는 히스토리가 된다.
3. 상담실에서 나눈 대화, 어느 의대 지망생과의 이야기 (고2 상담)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학생의 활동은 세포 신호전달에서 출발해, 암세포의 신호 교란 메커니즘으로 이어졌고, 3학년 때는 표적 항암제의 작용 원리를 탐구하는 보고서로 완성됐다. 하나의 씨앗이 3년을 관통한 것이다.
미래 생기부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단순한 입시 전략이 아니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를 고등학교 3년 동안 스스로 묻는 과정이다. 그 물음이 진지했던 학생이 결국, 합격한 후에도 굿닥터가 될 것이다.
*필자 주: 위 칼럼은 서울권 의대를 합격한 학생과의 상담과 그 생기부를 참고해 작성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