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콘텐츠에도 이런 작품이 있었나'라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한류가 이제는 전 세계 이용자들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한류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더 많은 문화적·경제적 부가가치가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한류는 문화적 현상이다. 콘텐츠와 같은 문화상품은 단지 잘 만들었다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다. 현지인의 공감을 얻고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야 한류의 확장성이 있다.
한류 콘텐츠는 한국의 대표적인 혁신상품이다. 에버릿 로저스(E. Rogers)는 혁신(새로운 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려지고 수용되며,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혁신확산모형(Diffusion of Innovation)'을 제시했다. 소비자는 혁신에 대해 처음 알게 되고, 흥미를 느끼면, 사용여부를 결정하고, 실제 이용한 후에 계속 사용할지를 정한다. 혁신은 혁신자(Innovators)-초기 수용자(Early Adopters)-초기 다수자(Early Majority)-후기 다수자(Late Majority)-지각 수용자(Laggards) 단계를 거치며 확산된다. 초기 수용자에서 초기 다수자 단계로 넘어가는 데에 임계점(critical mass)이 존재한다. 모든 혁신이 계속 성장하지는 않으며, 어느 시점에 성장률이 둔화되고 정체기에 들어갈 수 있다. 한류는 혁신확산모형에서 어디에 위치할까?
사람의 정서와 감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상품은 일반 제조상품보다 소비자의 피로감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콘텐츠가 새롭고 신기하여 호기심을 끌고, 혁신자와 초기 수용자를 거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지금은 대중적(다수자) 수용 단계로 볼 수 있다. 한류 확산에 정체기, 심지어 퇴조기에 빠질 위험이 있다.
기업은 상업성에 바탕을 둔다. 화제성이 높거나 가시적인 매출과 수익 창출 분야에 집중하며 위험을 기피한다. 한류 상품에 대한 혁신자나 초기 수용자를 대상으로 할 유인이 부족하다. 실험적이거나 초기 진출단계와 같은 장르들이 소외될 것이다. 가시적이고 성공 분야에 경쟁이 집중되고 문화상품의 장르나 내용의 유사도가 높아질 것이다. 새로운 자극을 주지 못하고 차별성이 없게 되고, 익숙함은 감동을 감소시킨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잘못하면 한류 상품에 대한 호기심과 신선감,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K문화에 대한 장벽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한류 확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양한 K문화상품을 바탕으로 하는 한류 생태계 구축과 한류 문화시장의 실패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해외 소재 한국문화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즈니스센터 등 현지에서 현장과 직접 접촉하는 공공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조직·시설 운영비에 비해 사업예산이 상대적으로 적게 편성되고, 더구나 사업도 소액다건 형태다. 수출 상담/계약 건수, 관객 동원 수 등 정량적 평가와 단기적·가시적인 사업 위주로 되어 있다. 이런 예산 편성과 성과 평가는 전시성 행정과 일회성 사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자칫 사업 내용과 이벤트가 민간기업과 경쟁하게 되고 K문화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
공공기관은 K문화의 혁신자와 초기수용자 발굴과 저변 확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이벤트, 다양성과 새로움을 보여주는 실험적 프로그램 등을 통해 K문화에 대한 신선감과 관심도를 높이고, 시장성을 검증하여 민간기업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다양한 K문화상품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 진출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현지 업계의 정보 및 네트워크 등을 제공할 시스템이 정비돼야 할 것이다. 해외 공공기관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예산과 평가, 조직과 인력 등을 점검하고 구조적 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조현래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前 한국콘텐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