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유럽공장에 '탄소청구서' 온다 …CBAM 비용, 공시보다 수십배 클 수 있어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보이지 않는 탄소 청구서 : 현대자동차그룹 공급망에 쌓이는 CBAM 비용' 보고서 겉 표지. 출처 : 기후솔루션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보이지 않는 탄소 청구서 : 현대자동차그룹 공급망에 쌓이는 CBAM 비용' 보고서 겉 표지. 출처 : 기후솔루션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올해 본격 시행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의 유럽 생산 거점에서 향후 철강 관련 탄소비용이 현재 공시된 수준보다 크게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솔루션은 29일 '보이지 않는 탄소 청구서: 현대자동차그룹 공급망에 쌓이는 CBAM 비용' 보고서를 통해 현대자동차 체코 공장과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이 수입하는 한국산 자동차용 철강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CBAM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탄소집약 제품을 EU로 수입할 때 해당 제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올해 4월 유럽위원회는 첫 공식 CBAM 인증서 가격을 톤당 75.36유로로 발표했다. 현대차 체코 공장과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은 올해부터 CBAM 신고 의무를 지는 승인 신고인으로 분류된다. 첫 이행 주기의 인증서제출 기한은 내년 9월 30일이다. 다시 말해, EU 공장으로 들어가는 한국산 자동차용철강 1톤마다 탄소가격이 붙는다.

보고서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문제가 비용 발생 자체가 아니라, 그 비용을 산정하는 데 필요한 주요 변수들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체코 공장의 2030년 CBAM 관련 예상 비용을 21억 원(약 140만 달러)으로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산정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아는 슬로바키아 공장에 대한 CBAM 비용 추정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기후솔루션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두 유럽 공장의 철강 관련 CBAM 비용은 2030년 기준, 실무적 가정에 기반한 하한 추정치만으로도 약 5950만 달러(약 875억 원)에 이를 수 있다. 한국산 고로 기반 철강 비중을 100%로 가정한 상한 시나리오에서는 약 9920만 달러(약 1460억 원)까지 늘어난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공시한 2030년 CBAM 관련 예상비용 약 140만 달러(약 21억 원)와 비교하면 최대 70배에 달하는 규모다. 2028년 이후 검증된 실제 배출량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EU 기본값에 30% 가산이 적용될 경우, 2030년 비용은 하한 추정치 기준 약 7740만 달러, 상한 시나리오 기준 약 1억 2900만 달러까지 확대될 수 있다.

특히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은 실무적 가정에 기반한 하한 추정치 기준으로도 현대차 체코 공장보다 더 큰 비용이 예상되지만, 기아는 관련 비용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철강 관련 CBAM 비용의 하한 추정치는 현대차 체코 공장 약 2890만 달러,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 약 3070만 달러로 추산된다. 상한 시나리오에서도 현대차 체코 공장은 약 4810만 달러,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은 약 5110만 달러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현대자동차가 공시한 21억 원이라는 숫자도 2030년 전망치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현대자동차의 공시액을 역산한 결과, 해당 금액은 2030년 조건이 아니라 2026년 과도기 조건, 즉 CBAM 적용 비율 2.5%와 2026년 1분기 탄소가격을 적용한 값에 가까웠다. 2030년에는 CBAM 적용 비율이 48.5%로 높아진다. 철강만 보더라도 비용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이 비용 격차가 단순한 모델 오차가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공개하지 않은 변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핵심 변수는 △수입 철강의 탄소집약도 △차량 1대당 실제 철강 사용량 △한국산 철강과 EU산 철강의 조달 비중 △고로와 전기로 등 생산 방식 △원재료와 부품 수입의 구분 △EU 탄소가격 전망 △CBAM 산정 방법론 등이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의 공시만으로는 투자자가 비용 규모를 독립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 CBAM 신고 의무와 비용이 그룹 내 어느 법인에 귀속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아, 투자자가 재무적 영향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보고서는 지적했

다.

특히 보고서는 현대제철이 이미 올해 2월 독일·체코·슬로바키아 등에서 약 30개 유럽 고객사, 160명 이상의 관계자를 대상으로 CBAM 설명회를 열고 철강 관련 탄소집약도와 배출 데이터, 비용 시나리오를 설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후솔루션은 “문제는 데이터의 부재가 아닌, 선택적 제공”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고객에게는 제공되는 정보가 정작 현대차그룹 투자자에게는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의 CBAM 리스크는 2028년 이후 더 커질 수 있다. 현재 완성 승용차는 CBAM 적용 대상이 아니며, EU 역내에서 조립되는 차량 자체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EU는 2028년 이후 철강을 사용한 하위 가공품과 자동차 부품 등 약 180개 다운스트림 제품으로 CBAM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 경우 한국의 1·2차 자동차 부품 협력사와 기아의 상용차·PBV 수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솔루션은 보고서에서 CBAM 비용을 줄이는 방법도 제시했다. 검증된 실제 배출량 데이터를 공개하면 2028년 이후 적용될 수 있는 30% 가산이라는 페널티를 피할 수 있다. 이는 추가 설비투자 없이 가능한 조치다. 더 근본적으로는 현대제철의 저탄소 철강 전환, 전기로·수소환원제철 확대, 유럽 저탄소 철강 조달 확대 등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탄소집약도가 낮아질수록 2030년 CBAM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EU 고로 기준 배출계수 1.53 tCO₂/t를 적용하면 두 공장의 2030년 하한 추정 비용은 5950만 달러에서 3890만 달러로 낮아진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스테파니 스페샤 기후금융 전략가는 “현대제철은 올해 2월 유럽 고객사에 구체적인 CBAM 비용 시나리오 데이터를 설명했지만, 현대차그룹 투자자들은 같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며 “공개 자료만으로 분석해도 두 EU 공장의 철강 관련 CBAM 비용은 2030년 5950만 달러에서 9920만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이는 현대차가 공시한 140만 달러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페샤 기후금융 전략가는 “탄소 비용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 부재가 아니라 기업의 공시 선택 문제다. 투자자는 이를 재무 리스크로 평가할 수 있다”라며 “현대차와 기아는 철강 탄소집약도, 조달 비중, 산정 방법론을 공개해 투자자가 실제 비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현대차그룹과 투자자에게 △검증된 철강 탄소집약도 공개 △고로·전기로 생산 방식별 조달 비중 공개 △한국산·EU산 철강 조달 비중 공개 △차량 1대당 철강 사용량과 산정 경계 공개 △CBAM 비용 산정 방법론과 탄소가격 가정 공개 △투자자가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재현 가능한 재무 모델 제시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에 대한 별도 비용 추정 공개를 요구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