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농식품 싱가포르 열풍] 라면부터 딸기까지…한국 식품, 현지 일상 속으로

싱가포르 최대 유통업체 페어프라이스(FairPrice)의 케이프레시 존(K-Fresh Zone)에 한국산 콩나물과 부추 등 신선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싱가포르 최대 유통업체 페어프라이스(FairPrice)의 케이프레시 존(K-Fresh Zone)에 한국산 콩나물과 부추 등 신선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싱가포르 최대 유통업체 페어프라이스(FairPrice) 신선식품 매대 한쪽에 위치한 '케이프레시 존(K-Fresh Zone)'에는 매일 인파가 몰린다.

한국산 채소와 과일을 모아 놓은 특설매대에는 콩나물과 깻잎, 애호박, 팽이버섯부터 고구마까지 한국 마트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농산물이 신선함을 뽑내고 있다. 오이무침과 애호박전 등 한국산 식재료를 활용한 조리법도 매주 바꿔가며 소개된다. 라면과 김치로 친숙해진 K푸드가 이제 현지인의 일상적인 장보기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특성상 농식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식품이 경쟁하는 시장인 셈이다. 페어프라이스 신선식품 코너에도 일본과 호주, 동남아에서 물 건너온 농산물이 빼곡하다. 그 사이 비집고 자리한 한국산 농산물 전문 케이프레시 존은 2017년 처음 문을 연 뒤 올해로 9년째 운영되고 있다. 현재 한국산 신선농산물을 별도로 진열하는 페어프라이스 매장은 20여곳에 이른다.

특히 콩나물과 깻잎은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품목으로 등극했다. 한국 식당에서 쌈이나 국·찌개 등을 통해 접한 뒤 마트에서 직접 구매하는 현지 소비자가 늘었다. 밤고구마도 판매가 좋은 편이다. 연말에는 배추와 무를 찾는 손길이 많아진다. 12월부터 제주산 무 공급이 재개되고 연말과 설 연휴 수요가 이어지면서 케이프레시 존 매출도 증가한다.

현지인들이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는 조리법도 함께 안내하고 있다. 오이무침과 애호박전 등 매주 다른 한국 요리를 소개해 구매한 식재료를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새싹인삼처럼 생소한 품목도 삼계탕 전문점 등 현지 외식업체에서 구매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는 게 마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페어프라이스 신선식품 담당자인 크리스틴 웡(Kristin Wong)은 “한국 식당 등을 통해 한국산 채소를 접한 현지 소비자들이 마트에서도 관련 식재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과일군에서는 한국산 딸기의 인기가 가장 높다. 신선식품 수입·유통업체 프레시마트(Freshmart)가 취급하는 품목의 70% 이상은 과일이다. 한국에서는 딸기와 포도, 복숭아, 참외, 멜론, 배 등을 들여온다. 깻잎과 애호박, 콩나물, 부추, 상추 등 채소도 취급한다.

싱가포르 최대 유통업체 페어프라이스(FairPrice) 케이프레시존 코너에서 현지 소비자가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싱가포르 최대 유통업체 페어프라이스(FairPrice) 케이프레시존 코너에서 현지 소비자가 농산물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 전체 딸기 수입 물량 가운데 한국산 비중은 31%로 가장 높았다. 금액 기준으로도 약 40%를 차지한다. 일본산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으면서 품질 경쟁력을 갖춘 것이 강점이다. 금실이 주력 품종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홍희와 골드베리 등 신품종도 시장에 들어오고 있다.

피안 오 린(Puan O Lin) 프레시마트 비즈니스 매니저는 “신품종은 맛과 품질이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라며 “금실보다 비싸지만 품질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이라는 이름만으로 판매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마트 매장에서는 호주산 고구마가 한국산의 절반 수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중국산 샤인머스캣 역시 품질이 좋아진 데다 가격까지 낮아 한국산과 경쟁하고 있다. 오 린 매니저는 “싱가포르 소비자는 우선 가격을 보고 그다음 품질을 따진다”며 “두 조건을 만족한 뒤 결국 맛이 있어야 재구매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신선농산물은 싱가포르까지 품질을 유지해 유통하는 것도 과제다. 딸기 등 민감한 품목은 수확 이후 운송과 통관, 매장 입점까지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판매까지 통상 7~10일이 걸리고 선박 운송은 선적 과정까지 포함하면 2주가량 소요된다. 작은 멍이나 짓무름, 곰팡이도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오 린 매니저는 “한국산 농산물은 수출 과정에서도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물류 개선을 과제로 꼽았다.

싱가포르 한식당 주신정(Ju Shin Jung)에서 현지 고객들이 한국식 바비큐를 즐기고 있다.
싱가포르 한식당 주신정(Ju Shin Jung)에서 현지 고객들이 한국식 바비큐를 즐기고 있다.

마트에서 만난 한국 식재료가 실제 현지인 식탁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는 한식전문식당에서 여실히 엿볼수 있다. 2003년 문을 연 한식당 주신정(Ju Shin Jung)은 개점 당시 고객의 90%가 한국 교민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반대로 현지인이 전체 고객의 약 90%를 차지한다.

박재용 주신정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실내 숯불구이 허가를 받아 한국식 바비큐를 선보인 인물이다. 당시에는 현지 한식당 대부분이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는 형태였지만 드라마 '대장금' 등을 계기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지 고객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지금은 고객의 90%가 현지인”이라며 “현지인 고객 비중이 절반을 넘지 못하는 한식당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시장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메뉴도 다양해졌다. 고기뿐 아니라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파전, 떡볶이, 삼계탕, 족발과 보쌈까지 현지 소비자가 찾는다. 최근에는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가 진출하고 싱가포르인이 직접 운영하거나 투자하는 한식당도 생겨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의 한식당은 300곳이 넘는다는 게 박 디렉터의 설명이다.

외식뿐 아니라 가정에서 즐기는 한국 음식도 다양해졌다. 한국 식품 수입·유통업체 에스엘푸드(SL Foods)가 페어프라이스에 공급하는 냉동식품만 약 45종이다. 만두와 김치, 냉동딸기를 비롯해 해물파전과 부추전 등 한국에서 먹던 메뉴가 냉동·간편식 형태로 판매된다.

유진 응(Eugene Ng) 에스엘푸드 리테일 비즈니스팀 디렉터는 “이제 쇼핑몰뿐 아니라 주거지역의 푸드코트에서도 한국 음식을 쉽게 볼 수 있다”며 “한류를 보고 한 번 경험해보는 단계를 넘어 한국 음식이 일상에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식품 수입·유통업체 에스엘푸드(SL Foods)가 운영하는 더 부처스 다이닝(The Butcher's Dining)에 한국산 소스류가 진열돼 있다.
한국 식품 수입·유통업체 에스엘푸드(SL Foods)가 운영하는 더 부처스 다이닝(The Butcher's Dining)에 한국산 소스류가 진열돼 있다.

다만 높은 국민소득에 비해 가격 민감도는 높다. 에스엘푸드는 간편식 가격을 10싱가포르달러 아래로 맞추고 할인 행사도 적극 활용한다. 일부 제품은 할인 때 판매량이 평소의 세 배까지 뛴다. 집에서 직접 요리하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해 에어프라이어나 전자레인지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제품의 인기가 높다.

이스리(Sur Lee) 에스엘푸드 상품마케팅 디렉터는 한국 식품의 강점으로 편의성과 제품 개발력을 꼽았다. 즉석밥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바로 넣어 조리하는 제품처럼 소비자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상품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한국식 핫도그처럼 기존 음식에 새로운 조리법과 형태를 더해 하나의 상품군을 만들어낸 사례도 있다.

그는 “싱가포르는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제품이 끊임없이 들어와 경쟁이 치열하다”며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내놓으면서도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격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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