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두 시에 울리는 상담 알림을 나는 아직도 끄지 못한다. 14년째다. 그날도 그랬다. “그 사진 때문에 학교에 못 가겠어요.” 열여섯 아이의 문장은 열여섯 글자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짧은 문장 뒤에 몇 번의 새벽이 있었는지 안다. 아이가 지우고 싶었던 건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 삼켜버린 자신의 오늘이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이 4만명이다. 무료로 기록을 지워온 14년 동안 필자는 한 가지 사실 앞에 자꾸 멈춰 섰다. 아이의 디지털 기록은, 아이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들은 대개 어른보다 먼저 포기해 있었다. 부모에게 말하면 혼날까 봐, 경찰에 가면 일이 커질까 봐, 아이들은 혼자 검색하고 혼자 지우려다 실패하고, 마지막에야 새벽의 상담 창을 두드린다. 그 문을 두드리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기록은 퍼져 있다. 나는 이 침묵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우리 사회의 숙제라고 믿는다.
돌아보라. 아이가 걷기도 전에 성장 사진이 올라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친구가 장난삼아 퍼뜨린 영상이 있고, 그것을 더 멀리 밀어 올린 추천 알고리즘이 있고, 신고 버튼을 눌러도 며칠씩 조용한 플랫폼이 있다. 기록의 주인은 아이인데, 기록이 태어나고 자라난 세계는 전부 어른들이 설계했다. 그렇다면 지우는 일이 어떻게 아이 혼자의 숙제일 수 있는가. 잊힐 권리는 개인의 권리이자, 공동의 책임이다.
책임의 자리는 셋이다. 첫째는 가정과 어른이다. 아이의 동의 없는 기록은 악의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 제 기록을 마주했을 때 지울 길을 열어두는 것까지가 어른의 몫이다. 둘째는 플랫폼이다. 유통의 이익을 누리는 자는 삭제의 의무도 져야 한다. 아동·청소년 관련 신고만큼은 처리 기한을 법으로 정하고 결과를 통보하게 하는 최소한의 책무가 필요하다. 셋째가 국가다.
그리고 국가는, 이미 한 번 해냈다. 2021년 12월 필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마주 앉아 청소년 기록 삭제의 제도화를 논의했고, 이듬해 '지우개서비스'가 태어났다. 지우는 일을 국가가 공적 서비스로 품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장면이었다. 이 서비스는 지금 연간 1만4000건을 처리한다. 나는 이 숫자가 자랑스럽다. 동시에, 이 숫자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현장에서 매일 확인한다.
이제 다음 페이지를 펼칠 때다. 수요는 느는데 인력과 예산이 따라가지 못한다. 삭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라, 퍼진 뒤에는 열 배의 노력으로도 절반을 지우기 어렵다. 청소년기의 기록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어제의 아이들', 즉 성인이 된 피해자는 사각지대에 있다. 그리고 공공이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는 구조에는 한계가 있다. 청소년 무료 원칙은 한 치도 물러서지 말되, 민간에 쌓인 삭제 역량을 위탁과 바우처로 연결해 속도를 끌어올리자. 필자는 지난달 이 내용을 국민신문고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유럽이 아동을 특별 보호 대상으로 못 박고 미국 일부 주가 미성년 시절 게시물 삭제권을 법에 새기는 지금, 먼저 출발한 우리가 속도에서도 앞서야 한다.
지운다고 해결되느냐고, 예방 교육이 먼저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맞다. 그런데 예방과 삭제는 선택지가 아니라 두 바퀴다. 교육이 내일의 피해를 줄이는 동안, 삭제는 오늘 밤을 새우는 아이를 구한다. 더구나 지난 기고에서 짚었듯, 인공지능(AI)이가 웹의 기록을 학습하는 시대에 골든타임은 더 짧아졌다. 아이의 기록이 AI의 기억이 되기 전에 지워야 한다.
그 새벽의 아이는 기록이 지워진 뒤 한 줄을 보내왔다. “이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필자는 이런 문장들로 14년을 버텼다. 그리고 앞으로의 14년도 이 문장들을 늘리는 데 쓸 작정이다. 아이들은 지우고 싶었다. 이제, 어른들이 답할 차례다.
김호진 디지털 장의사 hobarce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