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409〉 [AC협회장 주간록119] 스타트업에 국경은 없지만, 생태계에는 국경이 있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6/19/news-p.v1.20260619.40b00c3bd231452295b21fcfe81b6a64_P3.jpg)
지난 1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경제협력체(APEC) 포럼에서 '액셀러레이션에서 글로벌 스케일업으로: APEC 초국경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를 준비하고 여러 국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 질문이 더욱 분명해졌다. 기술과 창업은 빠르게 국경을 넘는데, 우리가 만든 스타트업 지원 생태계는 과연 그 속도를 따라가는가다.
지금은 서울에서 창업한 기업이 처음부터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AI와 클라우드, 글로벌 플랫폼의 발전은 창업기업이 해외시장에 접근하는 비용을 크게 낮췄다. 그러나 실제 사업이 국경을 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규제와 인증이 달라지고, 고객을 다시 찾아야 하며, 유통망과 파트너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투자자 네트워크도 대부분 자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나는 이것을 '기술의 글로벌화와 생태계의 로컬화 사이의 간극'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여 년간 액셀러레이터의 역할도 크게 변했다. 초기에는 교육과 멘토링, 데모데이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만으로 기업의 성장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스타트업에는 자본, 시장, 기술 그리고 신뢰라는 네 가지 자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특히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에는 현지 고객과 투자자, 대기업, 정부기관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중요하다.
한국 역시 글로벌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육성하는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나 역시 오랜 기간 해외 스타트업의 한국 진출을 지원하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좋은 스타트업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기업이 한국에서 실제 고객을 확보하고 투자를 유치해 다음 시장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액셀러레이션은 '유치'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유치(Attract), 현지화(Localize), 성장(Scale)이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돼야 한다.
APEC에서도 이제 이러한 연결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발표에서 나는 이를 'APEC Startup Bridge'라는 개념으로 제안했다. 방식은 복잡하지 않다. APEC 회원국의 역량 있는 액셀러레이터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스타트업이 베트남이나 싱가포르에 진출한다면 현지 액셀러레이터가 시장검증과 고객, 투자자, 기업 파트너를 연결한다. 반대로 해외 스타트업이 한국에 진출하면 한국의 액셀러레이터가 이를 이어받는다. 한 국가의 프로그램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국가의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구조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스타트업 정보의 상호운용성이다. 기업의 기본정보와 투자단계, 기술검증, 시장성과 등을 일정한 기준으로 공유한다면 국가를 이동할 때마다 처음부터 기업을 평가하는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둘째는 액셀러레이터 간 상호주의다. 각국의 검증된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을 서로 연결하고 후속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해외 연수나 일회성 데모데이를 넘어 실제 고객과 매출을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는 자본의 연결이다. 기업은 국경을 넘는데 투자자 네트워크가 국경에서 끊어져서는 안 된다. 공동투자와 신디케이션을 활성화해 스타트업이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 자본도 함께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몇 개 기업을 선발했고 멘토링을 몇 회 했는지가 아니라 해외 매출이 발생했는지, 유료 PoC가 만들어졌는지, 후속투자를 받았는지, 현지 유통 파트너를 확보했는지를 봐야 한다. 글로벌 액셀러레이션의 성과는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이 아니라 그 이후에 측정해야 한다.
앞으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이미 만들어진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여러 국가의 시장을 목표로 기업을 만드는 벤처스튜디오와 컴퍼니빌딩 모델도 가능하다. AI, 기후테크, 푸드테크, 물류, 헬스케어처럼 여러 국가가 동시에 직면한 문제라면 처음부터 APEC 시장을 대상으로 기업을 설계할 수 있다.
APEC에 하나의 거대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각 국가가 가진 생태계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자는 것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제조 인프라, 싱가포르의 금융 네트워크, 동남아시아의 성장시장, 미국의 자본과 기술 생태계처럼 각 국가의 강점은 다르다. 이 차이를 없앨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연결하면 경쟁력이 된다. 스타트업에는 이미 국경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우리의 생태계도 국경을 넘어 연결될 때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