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진흥법에 따라 국가 차원의 사진산업 실태조사가 시작되면 우리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이야기해 왔던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모습을 처음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업체와 종사자가 얼마나 되는지, 시장 규모와 소득구조는 어떠한지,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기술 변화가 기존 사진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진정책에는 상당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산업의 현재를 조사하는 것과 산업의 미래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올해 사진 관련 사업체가 몇 개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5년 동안 그 숫자가 왜 변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어느 시장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그 성장을 만들었는지, 새로운 기술이 어떤 직업을 만들거나 사라지게 했는지, 해외시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비로소 다음 정책과 산업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국가 사진산업 실태조사와 함께 반드시 추진해야 할 두 번째 과제로 매년 '대한민국 사진백서'를 발간할 것을 제안한다.
실태조사와 백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역할이 다르다. 실태조사가 특정 시점의 산업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작업이라면, 백서는 그 데이터를 여러 해에 걸쳐 축적하고 다른 자료와 연결해 변화의 원인을 분석하고 미래의 방향까지 전망하는 작업이다. 실태조사에서 사업체 수와 종사자, 매출과 소득, 고용형태와 기술 활용률을 조사한다면 백서에서는 그 숫자가 왜 변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광고사진 시장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면, 실태조사는 그 감소폭과 종사자의 변화를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백서는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기업의 광고 제작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자상거래와 플랫폼 시장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성형 AI가 이미지 제작비용과 수요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기존 상업사진 인력이 어느 분야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의 숫자가 산업 변화에 대한 지식으로 바뀐다.
이미 우리 사회의 여러 산업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콘텐츠와 게임을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는 시장 규모와 종사자, 이용행태와 해외시장, 기술 변화 등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관련 통계와 백서를 축적해 왔다. 이러한 기록은 매년 지난 한 해를 지속적으로 정리하며 여러 해의 자료가 쌓이면 산업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가 보이고,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으며 기업과 연구기관도 새로운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사진 산업에는 이러한 축적이 특히 중요하다. 사진 분야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전환됐고, 스마트폰이 일상의 카메라가 되었다. 인터넷과 SNS가 사진의 유통구조를 바꾸었고, 생성형 AI는 실제 촬영을 하지 않고도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를 열고 있다. 동시에 사진기술은 전통적인 촬영산업의 경계를 넘어 이미지 데이터와 산업용 비전, 공간정보와 디지털 아카이브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변화의 상당 부분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필름 현상소가 얼마나 줄었고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기업이 등장했는지, 스마트폰 이후 사진관과 스튜디오의 매출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진을 전공한 인력이 어떤 산업으로 이동했는지를 연속적인 데이터로 설명하기 어렵다. 산업은 크게 변했지만 그 변화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생성형 AI가 사진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새롭게 등장하는 이미지 관련 직업은 무엇인지, 사진기업들이 어느 기술에 투자하고 있는지, 대학 교육과 산업현장의 간극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지금부터 기록해야 한다. 1년의 자료만으로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지만 5년, 10년이 축적되면 그것은 산업의 방향을 보여주는 역사적 데이터가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진백서에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 기본적으로 산업 규모와 매출, 사업체와 종사자, 고용과 소득, 지역별 분포와 같은 핵심 통계가 매년 동일한 기준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예술과 상업, 인물과 기록 등 전통적인 사진시장뿐 아니라 이미지 유통과 디지털 아카이브, 산업용 이미지와 공간정보, AI 이미지 데이터처럼 사진의 전문성이 활용되는 새로운 영역의 변화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인력과 교육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직업의 수요가 감소하고 어떤 새로운 직무가 등장하고 있는지, 사진 관련 대학과 교육기관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실제로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 기업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교육과 산업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백서가 해야 할 역할이다.
특히 나는 연구개발(R&D)과 기술동향을 사진백서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사진 분야에서는 연구개발을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러나 AI와 컴퓨터비전, 고해상도 이미징, 색 관리, 3차원 이미지, 디지털 보존과 복원, 이미지 진본성 검증처럼 사진과 연결되는 기술의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사진 관련 기술에 어느 정도 투자하고 있는지,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해외에서는 어떤 기술과 표준이 등장하고 있는지, 국내에서 부족한 기술은 무엇인지 매년 추적한다면 백서는 새로운 국가 R&D 과제를 발굴하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사진산업을 단순히 기존 시장의 규모로만 평가하지 않고 앞으로 만들어질 기술과 시장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과 유통구조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사진저작물의 학습 이용과 보상, 이미지 출처와 진본성, 플랫폼 유통과 라이선스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사진가의 경제활동과 직접 연결되는 이러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기록해야 몇 년 뒤 제도적 대응이 필요할 때 과거의 변화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국제시장과 해외정책도 함께 봐야 한다. 대한민국 사진산업이 국내시장 안에서만 움직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해외에서는 이미지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주요 국가들은 AI와 저작권, 이미지 인증과 전문인력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비교해야 한다. 세계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위치를 함께 보여줄 때 백서는 단순한 국내 산업보고서를 넘어 국제경쟁력을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그리고 백서에는 반드시 정책에 대한 평가가 들어가야 한다. 정부가 전년도에 어떤 사업을 추진했는지를 나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업을 통해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목표한 인력이 양성됐는지, 기업과 시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대했던 효과가 없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정책도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다음 정책이 더 나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진백서를 한 번 발간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첫해의 백서는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산업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을 것이고, 기존 국가통계만으로는 찾기 어려운 자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벽한 백서를 기다리는 것보다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매년 같은 지표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7년과 2028년의 데이터를 비교하고, 다시 2030년과 2035년의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5년이 지나면 산업의 변화가 보이고 1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장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직업이 사라졌으며 사진기술이 어느 산업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다음 세대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진백서를 만드는 과정 역시 정부와 연구기관만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계전문가의 객관성과 함께 사진가와 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기술기업과 저작권·유통 분야 전문가 등 현장의 경험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숫자만 정확하고 현장의 변화가 빠져 있는 백서도 한계가 있고, 현장의 목소리만 있고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는 백서 역시 국가적 기준자료가 되기 어렵다. 데이터와 현장이 함께 만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백서가 만들어진다.
사진은 지난 180여 년 동안 세상을 기록해 온 매체다. 사람의 얼굴을 기록했고 도시와 사회의 변화를 기록했으며 전쟁과 재난, 문화와 일상의 순간을 다음 세대에 남겨왔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대한민국 사진산업 자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충분히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사진이 세상을 기록하는 것만큼 사진산업 자신의 변화도 기록해야 한다. 올해의 숫자를 조사하고, 그 숫자가 왜 변했는지를 분석하며, 새로운 기술과 시장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를 매년 남겨야 한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어느 순간 단순한 통계를 넘어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역사이자 미래를 판단하는 국가 자산이 될 것이다.
사진진흥법이 사진을 하나의 독립된 정책영역으로 인정했다면 이제 그 산업의 성장과 변화 역시 국가가 지속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실태조사가 오늘의 대한민국 사진을 한 장의 사진처럼 보여준다면, 매년 발간되는 사진백서는 그 사진들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영화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진백서를 매년 만들자. 우리가 오늘 기록하는 한 권의 백서가 10년 뒤에는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역사가 되고, 다음 세대가 새로운 사진의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jongje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