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가전기업의 가장 큰 위협은 기술력 자체보다 개발한 기술을 빠르게 제품화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하는 '실행력'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 전자산업 정책도 연구개발(R&D)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실증·인증부터 시장 진입과 매출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재영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부회장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 현장에서 “중국 기업들은 기술을 실제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하고, 이를 새로운 시장과 사업으로 연결하는 실행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로봇청소기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로봇청소기에서 축적한 인공지능(AI)·센서·모터·제어·소프트웨어(SW) 기술을 생활가전과 스마트홈, 로보틱스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IFA넥스트에서도 유니트리, 딥로보틱스, 애지봇 등 중국 기업들이 휴머노이드와 피지컬 AI 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박 부회장은 “단순한 기술력의 우열보다 이러한 강점을 얼마나 빨리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졌다”며 “앞으로도 우리 산업의 강점을 AI·로보틱스·부품·서비스와 연결해 새로운 제품과 사업으로 이어가는 실행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IFA2026의 변화도 같은 맥락으로 봤다. 지난 해까지 AI 탑재와 연결 자체가 화두였다면 올해는 AI가 사용자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실제 행동과 서비스로 연결되는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박 부회장은 “이제 경쟁의 핵심은 'AI를 얼마나 탑재했느냐'가 아니라 사용자의 상황을 얼마나 이해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해 실제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라고 말했다.
정부 산업 정책도 이같은 시장 변화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개발 성공이 곧 산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정부에서는 R&D 완료와 특허, 지원기업 수 등이 성과지표가 될 수 있지만 기업이 체감하는 성과는 결국 매출·비용절감·생산성·시장진입이라는 설명이다.
박 부회장은 “현장에서는 기술을 개발한 이후 '실증→제품화→규제·인증→시장진입→매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정책도 R&D 과제가 성공했는가에서 끝날 게 아니라 그 기술이 실제 시장에서 성과를 냈는지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역시도 사업화 성과를 내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규제 대응도 제품 경쟁력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부회장은 “EU 환경·데이터·보안 규제는 단기적으로 기업에 비용과 부담이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제품 신뢰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핵심은 새로운 지원사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개발된 좋은 기술이 실제 매출과 생산성, 수출로 연결되도록 정책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독일)=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