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무너졌다. 흙과 물이 강을 따라 쏟아져 마을을 덮쳤다. 1000명 넘는 사람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처음에는 지진이 원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위성사진을 뒤늦게 분석하고서야 빙하 붕괴로 드러났다. 위성 감시와 인공지능(AI) 분석이 미리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빙하의 균열과 강물 수위를 매일 읽는 모델이 있었다면 대피 시간을 몇 시간은 벌 수 있었을 것이다.
AI는 날씨와 산사태 예측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위성 영상과 강우량, 지형 자료를 함께 읽는 모델이 이미 활용되고 있다. 며칠 뒤 내릴 폭우와 그로 인한 산비탈 붕괴 위험을 지역 단위로 짚어낸다. 문제는 이런 기술이 가장 필요한 나라에 정작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공적개발원조, 곧 ODA를 떠올리게 된다.
ODA는 정부가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돕기 위해 지원하는 돈과 기술이다.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고 도로와 상수도를 놓아준다.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드문 사례다. 정부는 올해부터 AI와 디지털을 새로운 협력 분야로 포함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우리 정부의 ODA 사업 규모는 5조4000억원이 넘는다. 37개 기관이 1700개가 넘는 사업을 맡고 있다. 다만 외교부 몫은 2조2000억원 수준으로 전년보다 22% 줄었다. 돈이 줄어든 만큼 쓰임새를 더욱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한 번 지어주고 끝나는 사업보다 상대국의 능력을 키우는 사업이 낫다.
그 쓰임새 가운데 하나로 AI를 꼽을 수 있다. 개발도상국에 데이터센터를 세워주고 우리 독자 모델을 얹는 방식이다. 상대국은 이 모델을 재해 예측과 농업, 국토 관리에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공동 운영을 지원한 경험은 우리 기업의 자산으로 남는다. 지능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농업과 국토 개발, 보건, 교육 등 어느 분야에서든 AI는 밑동이 된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모델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을 시작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여러 용도에 맞게 고쳐 쓸 수 있는 바탕 모델이다. 지난 8월에는 2차 평가가 진행됐다. LG AI연구원의 엑사원과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등 세 팀이 다음 단계에 올랐다. 참여한 네 팀 모두 세계 수준의 성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SK텔레콤 모델은 수학 추론 시험에서 세계 최고 모델과 같은 점수를 기록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도 있다. 이들 모델은 오픈소스로 공개돼 누구나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다루고 글과 그림도 동시에 읽는다.
왜 우리 모델이어야 하는가. 미국은 지난 6월 국가안보를 이유로 앤트로픽의 페이블과 미토스 모델에 대한 해외 접근을 막았다. 페이블은 곧 제한이 풀렸지만 미토스는 지금도 미국 정부가 승인한 기관만 사용할 수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자국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무부가 최첨단 모델의 해외 접근을 막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AI를 반도체와 같은 국가 자산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의 선택지는 좁다. 다른 나라의 모델에 의존하면 잠금 스위치를 남이 쥐게 된다. 어느 날 접근이 차단되면 그 위에 세운 행정과 산업이 함께 멈출 수 있다. 자기 모델을 운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AI 제국주의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모델을 만들고 운용하는 힘을 잃는다면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모델은 많이 만들고 많이 활용할수록 발전한다. 개발도상국의 재해와 농업, 보건 자료로 우리 모델을 훈련하면 우리 모델도 성장하고 상대국도 역량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개발자와 기업이 현장에서 모델을 손보는 경험도 축적된다. 그 경험은 다음 모델을 만드는 밑천이 된다.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자국 모델을 보급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값싼 모델과 데이터센터를 묶어 통째로 내놓고 있다. AI 모델이 활용되는 범위가 곧 경제 영토다. 네팔의 강물 수위를 우리 모델이 읽게 하는 일, 그것이 원조이자 투자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