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이희수 제주은행장 “2030년 여신 10조…전국구 디지털은행 도약”

이희수 제주은행장.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희수 제주은행장.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대화 내내 제주은행의 변화에 대한 절박함과 확신이 동시에 묻어났다. 50년 넘게 제주에 뿌리내린 지역은행의 정체성은 지키되, 제주라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이희수 제주은행장은 지역에 기반을 둔 지방은행이 지역 시장에만 머물러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제주 경기 침체가 은행의 자산과 수익 성장까지 제약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공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가 제시한 돌파구는 전사적자원관리(ERP)와 금융을 결합한 'DJ Bank'다. 더존비즈온 ERP 안에 제주은행 금융을 내재화해 기업이 별도 은행 채널을 오가지 않고 계좌 개설부터 이체, 대출까지 금융 업무를 한 흐름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기업금융 모델이다.

이 행장이 주목하는 것은 채널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ERP에 쌓이는 매출·매입, 현금흐름 등 데이터를 활용하면 기존 재무제표 중심 신용평가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더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AI)을 결합해 자금 부족을 미리 예측하고 은행이 먼저 금융을 제안하는 'AI CFO'까지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 행장은 ERP뱅킹의 주요 고객을 전통 금융의 자금 공급에서 소외되기 쉬운 지방 소재 중소기업과 중저신용 중소기업으로 보고 있다. 과거보다 현재의 경영 흐름을 더 촘촘히 읽어 금융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이를 지방은행이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 모델로 보고 있다.

목표도 구체적이다. 2027년까지 완전한 비대면 디지털 제주은행을 만들고, 2030년에는 현재 약 6조7000억원인 여신자산을 최소 10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손익도 1000억원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전국 시장 진출이 제주를 떠나겠다는 뜻은 아니다. 제주 밖에서 성장 기반을 확보해 수익 규모를 키우고 이를 다시 지역 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돌려주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 행장은 이를 “제주에 머물되 제주에 갇히지 않는 금융”이라고 표현했다.

이 행장을 만나 ERP뱅킹을 통한 제주은행의 성장 전략과 지역은행의 새로운 역할, 전국구 디지털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을 들어봤다.

대담=길재식 디지털금융부 부국장

-제주은행이 ERP뱅킹과 DJ Bank에 승부를 건 배경은 무엇인가.

▲제주은행은 오랫동안 제주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지역만으로 자산을 늘리고 손익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고민이 컸다. 결국 제주은행이 앞으로 어디에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찾은 해법이 ERP다. 중견기업은 이미 주거래은행이 있어 제주은행을 새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가운데는 기존 결산 재무제표 중심 평가만으로 충분한 금융을 공급받지 못한 고객이 많다.

ERP에는 기업의 매출과 현금흐름 등 실제 경영 데이터가 계속 축적된다. 이를 활용하면 과거 자료에 의존하던 평가를 보완하고 기업을 더 자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고객군을 제대로 평가해 금융을 공급한다면 제주은행만의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단순히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특정 시장에서는 '제주은행이 강하다'는 인식을 만드는 차별화된 성장을 하고 싶다. ERP뱅킹을 그런 성장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DJ Bank가 기존 기업금융과 가장 다른 점은.

▲핵심은 ERP에 은행을 내재화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은 ERP에서 자료를 내려받고 다시 인터넷뱅킹에 접속해 업로드하는 등 업무가 단절돼 있었다.

DJ Bank에서는 기업이 평소 사용하는 ERP 안에서 금융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예금상품에 가입하고, 자금이 부족하면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계좌 개설부터 대출 실행까지 기업금융이 실제 업무 흐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내부통제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ERP에서 승인한 지출내역을 은행과 자동 연계하면 승인된 내용 그대로 이체가 처리된다. 담당자가 인터넷뱅킹에서 내용을 임의로 바꿀 가능성을 줄여 금융사고 예방과 컴플라이언스 강화에도 활용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이 은행 업무를 위해 별도 채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금융이 기업의 일하는 방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DJ Bank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ERP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는 어떤 차이가 있나.

▲DJ Bank는 결산재무정보와 기존 신용정보뿐 아니라 ERP 정보, 금융결제원, K-BIZ, 다날 등의 대안정보를 활용하는 개인사업자 전략모형을 별도로 구축했다.

ERP 실거래정보를 활용하면 세무신고나 결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을 거절하지 않고 실제 상거래 행동과 현금흐름을 추가로 볼 수 있다. 금융이력이 부족하더라도 사업을 건전하게 운영하는 기업을 더 잘 선별해 금융 접근성을 높이면서 리스크도 관리할 수 있다.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도 결국 기업을 제대로 가려낼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과거의 결산재무제표뿐 아니라 지금의 매출과 거래 흐름을 함께 본다면 기존 체계에서 놓쳤던 고객에게 금융을 제공할 수 있다.

초기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8월 한 달 소상공인과 소규모 법인을 대상으로 약 90억원을 공급했다. 올해 말까지 최소 900억원 이상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기반을 다지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만들 계획이다.

이희수 제주은행장.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희수 제주은행장.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AI와 ERP를 결합한 'AI CFO'는 어떤 모델인가.

▲기존 기업금융은 기업에 자금이 필요해진 뒤 은행을 찾는 방식이었다. 앞으로는 ERP와 금융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기업의 자금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은행이 먼저 필요한 금융을 제안해야 한다.

매출·매입과 자금 흐름을 분석해 향후 자금 부족이 예상되면 필요한 시점과 규모를 미리 알려주고 금융을 제안할 수 있다. 반대로 여유자금이 예상되면 기업 상황에 맞는 자금 운용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앞으로 거래처와 매출·매입 관계까지 분석해 경영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금융 제안으로 연결하는 '선제적 기업금융'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비유하자면 비가 곧 내릴 것으로 예상될 때 우산을 먼저 제공하고, 우산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에는 운동화를 내놓는 은행이다. 기업이 금융을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금융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 AI CFO의 지향점이다.

-전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지역은행의 역할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지역은행의 본질은 변해서는 안 된다.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을 줄이고 지역 소상공인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역할이다.

다만 그 방법은 바뀌어야 한다. 제주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제주 안에서만 자산을 계속 확대하면 경기 침체 때 은행도 함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도내와 도외 여신 포트폴리오를 6대4, 나아가 5대5까지 가져가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도외에서 성장해 손익 규모를 키우면 제주지역에 다시 공급할 수 있는 금융 여력도 커진다. 전국으로 나가는 것이 제주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주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지역화폐뿐 아니라 대학생 학생증 카드, 기업 임직원 카드, 외부 파트너십 연계 간편결제 인프라, 외국인 관광객 카드 등 지자체 정책과 금융을 연결하는 사업도 추진·계획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제주에 머물되 제주에 갇히지 않는 금융'이다.

-DJ Bank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만들기 위한 다음 단계는.

▲지금까지는 ERP 안에서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확대하며 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제는 기업의 경영·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을 더 입체적으로 평가하고 기업별 특성과 수요에 맞는 금융을 제공할 것이다.

고객 범위도 기업에서 임직원까지 넓힐 계획이다. ERP의 인사·급여 데이터를 활용하면 임직원에게 맞춤형 금융상품과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기업의 복지제도와 금융을 연결하는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ERP 데이터와 AI를 결합한 '자율형 금융'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기업의 거래망과 경영데이터를 토대로 금융이 필요한 시점과 위험을 판단하고 적합한 상품과 서비스를 연결·실행하는 것이다.

고객이 일일이 금융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기업 경영활동 속에서 필요한 금융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더존비즈온과의 협업은 어떻게 평가하나.

▲가장 큰 시너지는 서로 가장 잘하는 영역을 결합해 새로운 기업금융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더존은 ERP 플랫폼과 그 안에 축적되는 데이터를 갖고 있고 제주은행은 금융상품 설계, 심사·실행,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고 있다.

제주은행 입장에서 더존은 고마운 파트너다. 더존의 570억원 투자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투자 관계를 넘어 더존도 성장하고 제주은행도 성장하는 협업 모델을 만들고 있다.

현재는 신한금융과 더존 등 외부 전문 인력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주은행 자체 역량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향후 5년 안에는 제주은행 직원들이 주축이 돼 사업을 이끌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이희수 제주은행장.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희수 제주은행장. [사진=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제주은행의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임무는 2027년까지 완전한 비대면 디지털 제주은행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기반이 만들어지면 이후 성장 속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본다. 핵심 성장축은 ERP 데이터를 활용한 ERP뱅킹이고 다른 한 축은 디지털 비대면 접점이다.

2030년에는 현재 약 6조7000억원인 여신자산을 최소 10조원 이상으로 키우고 손익도 1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싶다.

하지만 숫자만 키우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은행을 선택할 때 'ERP뱅킹은 제주은행'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차별화된 시장을 갖고 싶다. 그 시장에서는 시중은행을 뛰어넘는 경쟁력을 가진 은행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성장해야 직원들도 제주은행이 좋은 은행이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은행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은행장으로서 경영철학과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취임하면서 '삼다삼무'라는 경영방침을 정했다. 제주은행이 지향해야 할 삼다는 '신뢰·행복·혁신', 극복해야 할 삼무는 '스캔들·두려움·한계'다.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과 직원이 자긍심을 가지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고객은 제주은행과 거래하는 데 만족하고 직원은 제주은행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은행은 57년을 걸어왔다. 과거 지역은행 직원이라는 자부심이 컸던 만큼 그 마음을 다시 펴주고 싶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고, 그렇게 번 것을 제주에 다시 투자하면서 지역에서 제대로 역할하는 은행을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 ERP를 통해 완전한 디지털 제주은행을 만드는 것은 제게 주어진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이희수 제주은행장(오른쪽)과 길재식 전자신문 디지털금융부 부국장이 대담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희수 제주은행장(오른쪽)과 길재식 전자신문 디지털금융부 부국장이 대담하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이희수 은행장은.

신한금융그룹에서 오랜 기간 영업과 금융 현장 경험을 쌓은 금융인이다. 신한은행 주요 영업 부문을 거쳐 신한저축은행 대표를 맡았으며 이후 제주은행장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 '신뢰·행복·혁신'을 늘리고 '스캔들·두려움·한계'를 없앤다는 '삼다삼무' 경영방침을 제시했다. 현재 더존비즈온과 ERP 기반 기업금융 플랫폼 DJ Bank를 추진하며 제주은행의 디지털 기업금융 사업을 전국 단위로 확장하고 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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