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기울어진 운동장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 한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 한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미 투자 2000억달러. 우리 돈으로 26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이 미국을 향한 첫발을 뗀다. 한국 정부는 1호 사업으로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223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고, 이달 말 수조원 규모 첫 송금도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20년간 투자금의 두 배 가까운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협상 이면을 들여다보면 씁쓸함을 지우기 어렵다. '혈맹' 간 굳건한 협력이라는 명분 뒤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점부터가 뼈아프다. 우리의 대미 무역 흑자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과 청구서가 그 시작이었다. 올해는 반도체 호황에 대미 흑자 폭이 예년보다 훨씬 더 커졌다. 흑자 규모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미국을 달래야 하는 얄궂은 처지다 보니, 우리 협상팀의 발걸음은 무겁고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돈을 대는 투자자가 으레 주도권을 쥔다는 상식도 무너졌다. 마지막 열쇠는 돈을 내는 우리가 아닌 미국이 쥐고 있다. 실무 협의가 마무리됐음에도 공식 발표가 미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재고 있는 탓이다.

물론 대변혁기 속에서 한미 동맹을 다지고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더욱이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 테이블이 애초부터 우리에게 평평할 리도 만무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방구석 정치인 한마디에 바로잡히는 만만한 현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다. 국민의 피와 땀이 밴 세금이 수십, 수백조원 투입되는 일이다. 동맹이란 이름이 조건 없는 양보를 뜻하진 않는다. 불리하게 셋팅된 판을 탓하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그 틈바구니에서도 투자자로서의 몫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확보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혹독한 샅바싸움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만이 국익을 지켜낼 유일한 무기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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