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 수급 공백…코스피도 휘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약 두 달간 투입한 55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마무리하면서 국내 증시가 수급 공백에 직면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던 핵심 매수 주체가 사라지자 코스피는 하루 만에 3.5% 넘게 급락했다. 시장의 시선은 다음 주 예정된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와 삼성전자 컨퍼런스콜로 쏠리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01.89포인트(3.52%) 내린 5533.77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4.02% 하락한 21만4500원, SK하이닉스는 5.48% 떨어진 122만3000원을 기록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074억원, 6934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1조원 넘게 순매수했다.
양사의 자사주 매입 종료가 수급 부담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당초 11월 19일까지 진행할 예정이던 약 4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한 달가량 앞당겨 마쳤다. 삼성전자도 지난 6일 약 15조원 규모의 매입을 완료했다. 두 회사가 매도 물량을 흡수하며 지탱해 온 수급 기반이 약해진 셈이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급락의 근본 원인을 자사주 매입 종료보다 시장 전반의 매수 여력 약화에서 찾는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위원은 “9월 외국인이 20조원가량 팔 때 16조원을 두 회사 자사주가 받아냈다”며 “자사주는 하방 경직성을 유지해 준 것일 뿐, 지금 급락은 자사주가 끝나서가 아니라 약세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기업의 신용 위험이 투자 둔화 우려로 번진 데다 레버리지 상품 손실로 개인의 매수 여력도 줄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 역시 주식시장 조정에 따른 평가 손실로 추가 매수 여력이 제한될 수 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주가와 기업 이익의 탈동조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고금리와 대외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외국인 자금이 위험자산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28일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와 29일 삼성전자 컨퍼런스콜에 집중되고 있다. 양사의 실적 전망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추가 주주환원책이 수급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가 핵심 변수다.
SK증권은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을 79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인 74조원을 약 7% 웃도는 수준이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 우려하는 메모리 업황 둔화와 감익 시나리오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며 “메모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하는데 시장은 아직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 주주환원 기대도 나온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잉여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최소 30조원 이상의 추가 환원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며 현금배당보다 자사주 매입·소각이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장기 공급 계약 확보 규모와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을 둘러싼 중복상장 우려 해소 여부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역시 내년 실적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내년 메모리 생산 물량의 약 80%를 장기 공급 계약으로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최근 주가 조정이 본질적인 이익 창출력 훼손보다 거시경제 불확실성과 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것이라며 내년 이익 증가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반면 실적 호조와 주주환원 기대가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는 신중론도 있다. 김석환 연구원은 “실적이나 장기 공급 계약 같은 재료는 이미 주가에 다 반영돼 있다”며 다음 주 이벤트가 주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봤다. 삼성전자의 경우 계열사 지분 관계 등을 고려하면 자사주 소각보다 배당 확대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단기 수급 불안에도 반도체 기업의 이익 전망이 주가 반등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는 남아 있다. 다만 자사주 매입이라는 대형 매수 재료가 사라진 만큼 다음 주 실적과 주주환원 계획이 실제 매수세 유입으로 이어질지가 국내 증시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