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는 정신을 위한 자전거와 같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사람은 맨몸으로 움직일 때 효율이 낮은 동물이지만, 자전거에 오르면 어떤 동물보다 적은 힘으로 멀리 간다. 좋은 도구는 사람을 대신하지 않고,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넓힌다.
인공지능(AI)이 탐색하고 계산하는 동안 사람은 맥락을 읽고 방향을 정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Ethan Mollick) 교수가 '듀얼 브레인'이라 부른 협업 방식이다. 그렇다면 AI라는 또 하나의 두뇌는 사람에게 무엇을 더해주는가. 필자는 그 답을 '상상력의 반경'에서 찾는다. 생각과 공감, 창작이 뻗어 가는 거리가 AI와 함께 넓어진다. 몰릭 교수는 AI가 놀랄 만큼 잘하는 일과 뜻밖에 못하는 일의 경계가 들쭉날쭉해서 직접 써보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모든 일에 AI를 불러 앉히라고 권한다.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부터 직접 할지는 써본 사람만이 알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미국 오스틴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행사장에 IBM의 푸드트럭이 섰다. 메뉴를 구성한 것은 AI '왓슨'이었다. 왓슨은 방대한 레시피와 재료의 향미 성분 데이터를 분석해 사람이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조합을 찾아냈고 덕분에 '오스트리아식 초콜릿 부리토' 같은 낯선 요리가 메뉴판에 올랐다. 그러나 출발점을 정한 것은 사람이었다. 뉴욕 요리학교 ICE(Institute of Culinary Education)의 셰프들이 주재료와 요리 스타일을 고르면 왓슨이 다른 음식 문화에서 어울리는 짝을 찾았고 셰프들은 그 목록에서 될 만한 것을 골라 비율을 바꾸고 간을 맞췄다. 기계는 탐색의 폭을 넓혔고 사람은 맛을 결정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 구조는 주방 밖으로 번지고 있다. 에이전틱 AI는 수백 가지 시나리오를 밤새 돌려볼 수 있고 피지컬 AI는 그 가운데 유망한 몇 개를 실제 공간에서 시험할 수 있다. 기획자는 가상의 고객 유형 수십 가지를 에이전트에 건네 반응을 미리 살피고 설계자는 가상공간에서 로봇 동선을 여러 차례 바꿔본 뒤에 실제 라인을 조정한다. 달라진 것은 속도만이 아니라 실패의 값이다. 실패 비용이 저렴해지면 시도는 대담해진다.
그런데 한국의 조직은 이 변화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 많은 현장에서 AI는 아직 보고서를 빨리 쓰는 도구에 머문다. 하던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데는 활용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는 좀처럼 활용되지 않는다. 도입 실적은 쌓이는데 새로 시도한 일의 목록이 비어 있다면 자전거를 사 놓고 걸어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패를 감점으로 기록하는 조직에서는 실험 비용이 아무리 내려가도 실험이 늘지 않는다.
듀얼 브레인을 제대로 활용하고 싶은 리더에게는 세 가지 힘이 필요하다.
첫째, 선택하는 힘이다. AI가 선택지를 백 개 내놓을수록 그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더 무거워진다. 몰릭 교수가 AI 활용 원칙으로 '사람이 판단의 고리 안에 머물 것'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융합하는 힘이다. AI는 주어진 범위 안의 최적값을 잘 찾지만, 기술과 예술, 데이터와 심리학처럼 서로 먼 영역을 한 테이블에 올리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먼 것끼리 이으려면 리더부터 자기 전공 밖을 기웃거려야 한다.
셋째, 실패를 쌓는 힘이다. 빨리 시도하고 틀린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 다음 시도에 반영하는 조직만이 낮아진 실험 비용을 성과로 바꾼다. 그렇게 쌓인 실패 기록은 다음 실험에서 AI에 건넬 가장 좋은 재료가 된다.
세 가지 모두 알고리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태도이자 문화다.
오스틴의 푸드트럭이 손님에게 내민 것은 기계가 만든 요리가 아니라, 기계가 넓혀 놓은 가능성 가운데 사람이 고른 한 접시였다. 결국 혁신의 기술은 AI에 상상을 맡기는 기술이 아니다. AI가 넓혀준 가능성 위에서 사람이 고르고, 잇고, 다시 시도하는 기술이다. 두 개의 두뇌가 함께 달리는 시대에도 자전거의 핸들을 잡는 것은 사람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