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신입사원의 업무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채용 기준을 학력에서 실무 역량과 잠재력으로 바꾸고 있다. 일본의 한 대기업은 고졸과 대졸 신입사원의 초봉을 동일하게 책정하고, 학력과 관계없이 문제 해결 능력과 변화 대응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기로 했다.
지난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공장자동화(FA) 부품 업체 미스미그룹은 이달부터 고졸과 대졸, 사회초년생을 동일한 기준으로 채용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신입사원 초봉은 학력과 관계없이 월 30만3000엔(약 257만원)으로 통일된다. 수당과 복리후생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일본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대졸자에게 더 높은 초봉을 지급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시도다.
미스미는 기존 대학·고등전문학교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고교생부터 대학생, 사회 경력 3년차까지 지원할 수 있는 '청년 잠재력 채용'을 신설했다. 전문성을 갖춘 경력직과 임원급 채용을 포함해 전체 채용 체계를 3개 트랙으로 개편했다.
새로운 채용 방식은 연중 수시 지원이 가능하며, 합격자는 다음 해 4월 이후 연간 네 차례의 입사 시기 중 원하는 때를 선택할 수 있다.
회사가 학력보다 잠재력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AI 확산에 따른 업무 환경 변화가 있다. 자료 작성과 정보 수집 등 기존 신입사원이 담당하던 업무를 AI가 상당 부분 대신하면서 채용 과정에서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역량도 달라졌다는 판단이다.
가토 쓰카사 미스미 최고인사책임자(CHRO)는 “젊은 사원들이 맡던 자료 작성이나 정보 수집의 대부분을 AI가 할 수 있게 되면서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일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지원자의 과거 도전 경험과 문제 해결 과정, 다른 사람과의 협업 능력 등을 중심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평가와 보상 체계도 바뀐다. 기존에는 입사 후 2년간 성과와 관계없이 동일한 대우를 했지만, 올해 봄 입사자부터는 1년차 평가 결과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학력에 따른 임금 차이는 없애되 실제 업무 성과에 따른 보상은 강화하는 방식이다.
일본 노동시장에서는 여전히 대졸자의 임금 우위가 뚜렷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월급은 26만2300엔(약 222만원)으로 고졸 신입사원 평균인 20만7300엔(약 176만원)보다 약 26% 높았다.
평생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는 고졸과 대졸자의 평생 임금 차이를 남성 4720만엔(약 4억원), 여성 5200만엔(약 4억4000만원)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일본 대학 진학률이 58.6%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도 취업 시장에서 학력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AI 확산으로 기업들이 학력보다 실제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기존 채용 관행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 밖에서도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늘어난 만큼 학력만으로 지원자의 능력을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