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 "4차산업혁명시대, 지식재산으로 국가경쟁력 키워야"

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우리나라는 1961년에서야 변리사법을 제정했다. 일본이 1921년 제정한 변리사법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법 제정 시기는 국내 산업 발전 신화가 태동할 무렵이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지신재산(IP) 가치가 급상승하며 변리사 역할도 확대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도가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변리사법은 제정 이후 전면개정 없이 일부개정만 26회 이뤄졌다. 이 가운데 타법에 의한 개정이 10회다. 법 조항 수도 제정 당시 22개 조항에서 29개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지금 변리사법은 바뀐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데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올해를 변리사·지식재산 제도, 정책 혁신 원년으로 선포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갈수록 분화하고 전문성을 띄는 산업 특성을 감안하면 소송 대리권 확보 등 변리사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안팎에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IP 컨트롤타워 역할과 관련해선 청와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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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변리사법 등 제도, 인식 개선에 주력한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 변리사법이 1961년 제정됐는데 일본이 1921년에 만든 변리사법 골격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 법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변리사 직무, 역할과 지식재산 가치를 반영해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변리사법이 국회에 올라가면 기득권에 막혀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회 합의를 거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정이 필요한 세부 내용을 설명한다면.

▲변호사 자동자격부터 시작해서 변리사 소송대리권 인정 문제 등 현안이 많다. 현 제도는 변호사 자격을 얻은 사람이 원하면 변리사 자격도 자동 부여한다. 변리사는 변리사회에 가입해야 하지만 변호사 대다수가 이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를 쓰고 있다. 현재 국내 등록 변리사는 9480명이다. 이 가운데 대한변리사회 가입자 수는 5447명에 불과하다. 변리사회 의무 가입을 규정한 변리사법 위반자 4000명 가운데 95%가 변호사 출신이다. 등록 변리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62%가량, 거의 5900여명이 휴업 중이다. 역시 대다수 변호사 출신이다.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받았지만 의무를 피하기 위해 변리사회 가입을 피하고 있다. 현행 제도로 인해 변리사 관리·감독에 맹점이 생겼고 이로 인해 전문성 약화, 법률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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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소송대리권 문제 쟁점이 무엇인가.

▲변리사법에 변리사 단독 대리를 인정하는 조항이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소송대리권 규정을 축소한 법원 판결을 인용, 변리사 활동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렸다. 해외 추세를 따르지 못한다. 영국은 적절한 자격이 인정되면 변리사가 지식재산 사건을 다루는 모든 법안에서 소송 대리를 할 수 있다. 중국도 최근 변리사 단독 대리를 인정했다.

현행 제도로 인해 개인, 기업이 소송에서 이중 부담을 지게 되고 행정적으로도 낭비가 심하다. 소송이 첨단산업을 포함한 산업 전 영역에서 발생하고 점차 전문성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지금 제도는 소송 전문성을 저하한다. 지식재산의 적정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체계를 갖추기 힘들다. 징벌적 손해 배상 원칙을 엄정하게 운영하는 인식도 필요하다.

-이로 인해 어떤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가.

▲크게 보면 지식재산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바뀌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특허 등록 수는 글로벌 수위지만 품질은 10위권, 심지어 20위권까지 밀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퀄컴 등 글로벌 주요 기업 한국 특허 출원율도 급격히 추락했다. 삼성, LG 등 우리 대기업도 우리나라보다 손해배상 규모가 크고 지식재산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미국 등 주요 시장 대응에 더 힘을 쏟는다. 해외는 관련 제도가 변리사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이같은 분위기에 따라 시장이 축소되고 전문성이 떨어졌다.

-자연스레 지식재산 쪽으로 주제를 옮겨보자. 국가 지식재산 정책은 어떤 상황인가.

▲정책 방향성, 리더십이 아쉽다. 정부, 국회 등 정책을 세우는 분야에 전문인력이나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하다. 국가 지식재산위원회는 당초 계획보다 조직 위상이 약화했다. 시행령상 국무총리실이 관장하게 했지만 지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담한다. 관리 주체가 총리실에서 부처 단위로 넘어갔다. 법에 의해 지식재산 기본계획을 수립하긴 하는데 문제 진단, 추진 주체가 명확치 못하다. 당초 계획보다 분명 후퇴했다.

지식재산위원회는 지식재산기본법에 의해 설립했다. 이 법 또한 일본법에서 골격을 갖고 왔다. 일본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장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식재산 경쟁력 강화를 돌파구로 선택했다. 총리 직속으로 국가 기구를 설립하고 지금도 총리가 지식재산전략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각 부처 장관이 전부 참석한다. 우리나라는 국무총리, 민간 위원장이 번갈아 주재하는데 민간위원장 회의 때는 장관 참석률이 낮다.

정부 지식재산 정책, 컨트롤타워 현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주소불명'이다. 그동안 지식재산 정책은 해외 사례를 따라가는데 급급했다. 이를 통해 겉모양은 갖췄지만 강한 권리, 산업 혁신 촉진하는 기능에는 정책이 부합하지 못한다.

사진=박지호 기자
사진=박지호 기자

-지식재산 경쟁력이 점차 약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U 혁신지수 등을 보면 우리나라는 특허 양적 측면에선 1등인데 품질 내용측면에선 10위권 밖이다. 현 정부 국정 어젠다가 혁신성장이다. 새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과제인데 혁신의 수단이 뭐겠나. 바로 지식재산이다. 혁신을 촉발시키는 건 결국 사람이다. 아이디어, 즉 지식재산이 사업토대가 되고 돈이 된다는 확신, 신호를 줘야 한다.

지식재산 품질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최고 지도자 차원에서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 백악관 시스템이 좋은 예다. 대통령 직속으로 지식재산집행관을 두고 있다. 중국과의 지식재산 분쟁 등을 모두 여기서 관장한다.

현재 청와대 조직구조상 청와대 경제수석실 아래 산업정책비서관이 하는 것인지 과학기술보좌관실이 담당하는 것인지 명확치 않다. 문화, 식물 등 농수산물, FTA 등 범부처 현안을 보면서 지식재산 정책 방향성을 설정해야 한다. 지식재산위원회 역할을 이에 맞게 재설정하고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특허제도가 나라를 부흥시켰다. 경제 발전, 미래 산업 경쟁력의 열쇠라는 개념이 명확하다. 우리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왜 지식재산 소송이 미국에서 활발할까. 제도, 인식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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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 지식재산 교류 난맥도 지적했다.

▲우리 지식재산을 북한에 등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등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올해 2월까지 한국의 북한 상표권 등 상표권 등 특허 출원수는 83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출원한 83건 가운데 11건은 북한이 특허 심사를 취소했거나 우리 측이 출원을 취소했다. 독일·영국 등은 8000여건, 중국은 5000여건, 심지어 미국도 1500여건을출원했다. '애플' 등 상표가 이미 북한에 등록됐다.

우리 협회도 문제 의식을 갖고 북한 발명 총국 등에 대화 요청했지만 답이 없다. 조국평화통일위나 경제교류협력위 차원 결정 없이는 풀지 못하는 과제다.

유독 남북 대화만 단절돼 있다. 이런 상황이면 경협이 된다 해도 막상 상품, 서비스 들어갈 때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은 특허, 상표, 디자인 보호가 안 되면 해당 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 경협의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다. 남과 북만 지금 이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지식재산을 남북 경협 주요 의제로 다뤄야 하나.

▲그렇다. 남북 모두 관련 국제 협약에 가입했다. 틀은 다 갖췄다. 양방 출원 인정해주고 다른 제도에 대한 표준 논의 등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 법률 제도 통일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해야 한다. 상호 관심사도 발굴해서 정리해야 한다. 경기도가 옥류관 상표를 유치하려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제3자가 남한에 이미 이 상표를 등록해 놨다. 1990년대 초 남북이 서로 지재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반대 사례도 분명 생길 수 있다. 우리가 중국 시장에서 겪은 지식재산 도용, 표절 문제가 북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관심 가져야 한다.

북한도 기초과학, 품종 등 지식재산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많다. 남북이 상호보완할 수 있는 지식재산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재산 관련 지역 연합이 많다. EU가 대표적이다. 상표, 디자인은 따로 '청'을 만들어 별도 관리한다. 이런 부분을 참고할 수 있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 "4차산업혁명시대, 지식재산으로 국가경쟁력 키워야"

◆오세중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1995년 제32회 변리사시험에 합격했고 2000년 해오름국제특허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2005년 지식산업발전연구회 회장,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무역위원회 지식재산권 자문 위원으로 재임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경희대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오 회장은 1977년 서울대 인문대에 입학 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반대, 1980년 '서울의 봄' 학생민주화운동으로 2차례에 걸쳐 제명을 당해 1991년 철학과에서 늦은 졸업을 했다. 1983년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과 민청련 창립을 주도하고 기관지 '민주화의 길'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담=이호준 정치정책부장

정리=최호기자 snoop@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