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술의 발전 속도를 얘기할 때 회자되는 대표적 학설이 무어의 법칙이다. 시스템의 성능을 좌우하는 마이크로칩의 용량이 18개월 단위로 2배씩 향상된다는 게 골자다. 실제로 이 기술향상에 발맞춰 고객들은 IT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해 왔다. 이 덕분에 무어의 법칙은 IT시장 순환주기를 말해 주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IT업계에는 이른바 ‘역(逆) 무어의 법칙’이란 말이 나돈다. IT투자의 축소경향을 빗댄, 아직 논리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비유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기술과 성능의 발전에 따라 투자도 증대되고 업그레이드 시기도 빨라져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기저에는 경기침체라는 요인이 깔려 있다.
국내 한 조사 전문업체가 연간 매출 1000억원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T에 대한 투자가 내년 매출의 0.7%도 채 안될 모양이다. 선진국이 3∼4%인 것과 비교하면 까마득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금융권을 제외한 순수 제조업의 투자 측면에서 보면 0.3% 가량으로 뚝 떨어질 것이란다. 이 정도라면 IT 투자 운운하기보다는 유지보수 차원의 비용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IMF 전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IT 투자를 게을리하면 경쟁에 뒤지는 것으로 생각해 너도나도 IT투자에는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굵직한 IT프로젝트가 많았고 중견기업들까지 IT투자에 열을 올렸다. e비즈니스도 바빴다. B2B, B2C 등의 투자도 활발했다. 공기업이나 민간기업 나아가 전통 제조업까지 산업 전반에서 IT투자는 이른바 ‘생존의 문제’였다.
현재 문제는 단순한 수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정책방향과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가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먼저 전 산업에 걸쳐 열풍처럼 몰아친 정보화 이후 IT 강국으로서 위상을 지켜나갈 만한 이렇다 할 전략이나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나, IT투자를 비용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의 마인드도 그렇다.
연말이면 으레 내년 사업계획 마무리에 바쁘다. 또 신년이면 한 해 농사지을 궁리에 마음이 부풀기 마련이다. 이 같은 ‘역 무어의 법칙’이 내년 IT업계를 휘젓는다면 내년 한 해 농사 전망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한국형 뉴딜정책이니 하는 요란한 정책이 아무리 많이 쏟아져 나와도 민간의 자율적인 투자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정책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정책 당국의 혜안이 필요한 때다.
박승정 IT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