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달의 고개를 넘는 2004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보통신부 등 4개 부처와 부패방지위원회의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노 대통령은 정통부 차관에 김창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과학기술부 차관에 임상규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작고, 농림부 장관, 순천대 총장 역임), 농림부 차관에는 김주수 농림부 차관보(현 경북 의성군수)를 임명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현 인재아카데미 이사장, 사단법인 사랑의빛 이사장)은 차관급 인사 배경에 대해 “김 정통부 차관은 기술고시 출신의 정통관료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성이 높고, 정통부 핵심부서에 두루 근무하면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정통부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정보화촉진기금의 공정하고 투명한 배분 등 효율적 운영체계 확립에 기여할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노 대통령은 김 차관에게 “진대제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을 도와 IT강국 구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차관은 이날 오후 5시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197>김창곤 정통부 차관](https://img.etnews.com/photonews/1409/603031_20140911173643_226_0002.jpg)
신임 김창곤 차관은 자타가 인정하는 ‘일편단심 체신부맨’으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기술고시 합격 후 다른 부처로 발령이 나자 체신부로 오기 위해 다시 기술고시를 본 남다른 경력의 소유자다. 그는 1968년부터 체신부에서 9급 공무원으로 7년 8개월 근무하다 1976년 2월 소백산 연화봉 중계소장으로 발령나자 곧바로 사직했다. 당시 그는 한양대 4학년으로 기술고시 2차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지방근무를 하면 고시공부에 매진하기가 어려웠다.
그해 12월 기술고시 12회에 당당히 1등으로 합격해 체신부를 희망했지만 성적순에 따라 국무총리실로 배정됐다. 그런데 총리실에서 과학기술처로, 다시 관상대(현 기상청) 부산지대 통신계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체신부 동의를 받아 체신부로 보내줄 것을 관상대에 요구했지만 “기상장비 현대화를 해야 하는데 당신같이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승진도 빨리 시켜줄 테니 가지 말라”며 보내주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인 1977년 다시 기술고시 13회 시험을 치렀다. 이번에는 2등으로 합격했다. 다시 체신부를 희망했지만 국방부로 발령이 났다.
그는 고심 끝에 이경식 당시 체신부 차관(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역임) 비서관을 통해 사정을 이 차관에게 전했다. 이 차관이 직접 나서 그를 체신부로 데려왔다. 첫 보직은 서울 노량진전화국 기계과장이었다. 그곳에서 체신부가 실시한 전자교환기 교육에서 1등을 했다. 그 바람에 당시 체신부 핵심부서인 시설국으로 스카우트됐다. 일편단심 체신부만을 고집한 그의 이야기는 체신부 안에 향기로운 화제가 됐다.
그는 체신부 시절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을 비롯해 1994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2000년대 초고속인터넷 통신망 구축 사업, DTV 전송방식 타결 등 IT강국의 초석을 다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정통부에서 기술심의관과 전파방송관리국장, 정보통신지원국장, 기획관리실장, 정보화기획실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물러난 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으로 일했다.
그해 2월 27일.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이날 오후 집무실에서 내한한 미국 퀄컴의 어윈 제이콥스 회장을 만났다. 당시 한국과 미국은 한국이 개발한 휴대폰 무선인터넷 플랫폼인 위피(WIPI)와 미국 퀄컴이 개발한 브루를 놓고 통상마찰을 빚고 있었다. 위피는 한미 통상마찰 1순위였다. 처음 미국 측은 진 장관이 미국에서 공부를 해 친미 성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 장관이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자 미국 측은 유력인사를 한국에 보내 위피 표준을 막으려 했다.
진 장관은 제이콥스 회장과 면담 후 기자실에 들러 “제이콥스 회장이 위피 표준화 중지를 요구하기에 ‘무선인터넷 표준을 위피로 단일화하는 정부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브루와 위피가 상호호환만 된다면 국내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위피 표준 채택을 막으려던 퀄컴 회장은 빈손으로 정통부를 나섰다.
진 장관은 미국 국무부 국제정보통신정책조정관인 데이비드 A 그로스 특임대사와도 만나 한 시간 동안 위피 탑재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진대제 장관의 회고.
“미국 측에서 10여명이 왔는데 나는 장관실 칠판에 도표를 그려가며 그로스 대사에게 “한국 통신 업계가 표준을 정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 대신 브루도 호환만 된다면 허용하겠다”고 설득했습니다. 논리에 막힌 그로스 대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당시 한덕수 통상본부장(국무총리 역임, 현 한국무역협회장)도 “위피 시장규모도 크지 않은데 미국과 통상마찰을 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자”고 말했다.
그해 4월 23일.
정통부는 한미 간 통상마찰 1순위였던 위피 문제를 협상을 거쳐 한국 의도대로 타결지었다.
정통부는 이날 미국에서 21일부터 22일까지 협상을 해 우리나라에서 출시되는 신규 단말기 무선인터넷 표준은 반드시 ‘위피’를 지원해야 한다는 데 한국과 미국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당시 협상대표로 참석했던 서광현 정통부 기술정책과장(지경부 기술표준원장 역임, 현 KTNET 사장)의 말.
“위피 의무화를 반대했던 미국 측이 의무화에 동의했습니다. 기술전문가이자 시장을 잘 아는 진대제 장관이 협상안을 내고 단지 나는 심부름만 했을 뿐입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2005년 4월부터 출시되는 휴대전화 단말기에 위피 탑재를 의무화했다. 이후 위피는 개화기를 맞았다. 2006년 3월 위피 탑재 휴대폰은 1000만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정통부가 폐지된 이후 2009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위피 탑재 의무화를 폐지했다. 한국이 이룩한 기술 쾌거가 만개(滿開)하지 못하고 시들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통부는 역대 국방부 장관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군(軍) 초고속인터넷 구축 사업도 지원했다.
2005년 1월 어느 날.
스타 장관으로 외부 초청강연이 유독 많았던 진대제 장관은 이날 국방부의 요청으로 각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세계에서 통하는 IT’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날 무렵, 이원승 당시 육군본부 정보화기획처장(당시 준장, 현 KAIST 초빙교수)이 질문자로 나섰다.
“장관님, 해외에 나가서 한국이 IT강국이라고 자랑하시면 실수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초고속망 세계 1위라고 하는데, 부하 3000명인 연대장실에 인터넷이 안 됩니다. 그런데 무슨 IT강국입니까.”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러시다면 장관님이 직접 전방 방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날 대화는 정통부가 군 정보화인 유비쿼터스 시범부대 구축 사업을 추진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이 준장은 군에 초고속인터넷을 구축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98년 미 육군교육사령부 교환교수로 2년간 근무하던 시절 미국 군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병이 장군들과 이메일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2000년 귀국 후 전방부대 연대장으로 부임한 그는 미군(美軍)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방 연대장실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그는 이메일을 개설한 후 3000장의 명함을 만들어 전 부대원에게 나눠줬다. 명함에는 혼자 해결하기 힘든 일은 연대장에게 이메일을 보내라고 적었다. 이 일은 전군(全軍)에서 처음이었다. 그는 부대 밖 PC방에서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했다. 400여통이 접수됐다. 그는 각종 애로사항을 즉시 처리했다.
2004년 준장으로 진급한 그는 육본 정보화기획처장으로 일했다. 그는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실에 인터넷망 구축사업을 추진했으나 예산관계로 2012년이 돼서야 연결이 가능했다. 그는 국방부에서 추진하던 BTL 사업에 초고속망 사업을 포함시켜 시기를 앞당겼다.
진 장관 특강 이후 정통부와 국방부는 2월 24일 국방연구 부분에서 상호협력하기로 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진 장관은 이 장군과의 약속대로 그해 11월 9일 최전방부대를 방문했다. 이 장군은 진 장관의 바쁜 일정을 감안해 최전방 방문에 헬기를 제공했다. 정통부에서 강중협 국장(행안부 정보화전략실장, 씨그널정보통신 사장 역임)과 손연기 한국정보문화진흥원장(현 한국정보통신기능대학장)이 동행했다.

(방통위 제공)
진 장관은 장병들에게 DVD 등을 선물하고 최전방 정보화 실태를 디지털카메라에 담았다.
이 장군의 증언.
“진 장관이 부대시설을 돌아보면서 주머니에서 디카(디지털카메라)를 꺼내 현장을 찍더군요. 놀랐습니다.”
정통부와 국방부는 2006년 4월 17일 국방정보화협력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이어 국방정보화 협력계획을 확정했다. 정통부는 국방부의 유비쿼터스 시범부대 구축사업에 1057억원을 지원했다.
진 장관 최전방 방문 후 뒷이야기 하나.
당시 진 장관이 방문했던 5사단 CP수색대대 장병 28명이 그해 12월 6일 정통부를 방문했다. 장병들은 진 장관에게 철책선으로 만든 기념패를 전달했다. 진 장관은 이들과 유비쿼터스 드림관을 같이 관람한 뒤 인근 음식점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장병들에게 그해 말은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가슴만은 디지털 열기로 따뜻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