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세상을 향한 구조신호, '기생충' 속 모스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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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포스터
<영화 기생충 포스터>

깜빡 깜빡, 계단 위 전등이 점멸한다. 고장난 줄 알았는데 꾸준히 지켜보니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리스펙트! 리스펙트!” 바깥세상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모스부호'다.

모스부호는 1800년대 미국인 새뮤얼 핀리 브리즈 모스가 고안한 전신부호다. 영화에서는 빛의 점멸을 이용했지만 기본적으로 전신 작동자가 전기 신호로 통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신에 전류를 흘리면 자기장에 의해 전선 끝 금속판이 붙었다 떨어지며 소리가 나는 원리다.

짧은 발신 전류와 긴 발신 전류 소리를 조합해 알파벳을 표현하고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구조신호로 널리 쓰이는 'SOS'는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짧게 세 번이다. 숙련되면 1분에 20~30개까지 단어를 전송할 수 있다.

모스부호는 1844년 미국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 전신연락용으로 처음 사용됐다. 이후 전쟁 등을 거치며 빠르게 세계를 연결했다. 우리나라에는 1885년 한성과 인천 사이 전신업무 개시와 함께 도입됐다. 한글 모스 부호는 함경북도 경흥 출신의 김학우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스부호의 기반이 된 전신은 현대 원거리 통신의 시초라 볼 수 있다. 봉화나 파발, 전서구 등 과거의 연락 수단과 달리 인프라만 구축돼 있으면 시·공간 제약 없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첫 통신 기술인 셈이다.

전화나 무선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발광 신호 혹은 소리만으로 쉽고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재난 발생 시 기본적인 모스부호를 알고 있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구조요청을 보낼 수 있다.

모스부호는 기생충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 속 단골소재다. '마션'에서는 화성과 지구 간 통신에 모스부호를 활용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도심 전체가 유독가스로 덮인 재난상황을 그린 '엑시트'에서도 모스부호로 헬기에 구조요청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정보 취약 계층의 접근성 향상 수단으로도 재조명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5월 안드로이드 구글 키보드 앱에 모스부호 입력 기능을 추가했다. 키보드 입력이 어려운 사용자에게 대체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삼성전자 역시 모스부호와 스마트폰 햅틱 기능을 결합해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도울 수 있는 '삼성 굿 바이브' 앱을 인도에서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간단한 스크린 터치만으로 시청각장애인 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음성 인식·변환 솔루션 적용으로 비장애인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상용화된 현대에도 모스부호가 지닌 통신언어로서의 생명력은 여전해 보인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