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캘리포니아 순환정전 교훈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8월 중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순환 정전이 발생했다. 원인을 두고 많은 의견이 제시됐다. 일각에서는 발전 설비 부족과 출력 변동성 심한 재생에너지 확대로 순환 정전이 발생했다고 봤다. 다른 한쪽에서는 수요 예측을 잘못했고, 전력 당국이 부실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분명한 것은 자연 조건에 의존해 불확실성과 변동성 큰 태양광발전이 확대됐는데도 전력계통 차원의 대비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태양광발전은 해 질 무렵에 출력이 급속히 떨어진다. 계통에 나타나지 않던 전력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고, 공급 여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정전 발생 가능성이 짙어진다. 기존의 운영 발전기 출력 상향 조정과 더불어 수요 반응, 가스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양수발전 등 대체 가능한 자원이 투입돼 수요·공급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를 시행할 수 없다면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지역에서 부하를 순차 차단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 질 무렵 시간대 폭염에 따른 수요 증가 예측 오류와 공급 여력 부족에 따른 수급 균형 유지 실패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세계 각국이 태양광·풍력 등 변동성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계통 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변동성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서 전력계통에서 수급 균형 달성과 일정 범위 내 주파수·전압 유지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해 8월 영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도 낙뢰로 인한 대형 발전기 고장과 풍력단지의 원인 모를 탈락으로 주파수가 급격히 하락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이 미미하지만 매년 증가세는 높아 가고 있다. 전력계통에서는 아직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도에서 풍력발전 출력 제한 횟수가 급증했다. 호남 지역에서 태양광발전 증가에 따른 과전압이 발생했고, 신보령 발전기 탈락에 따른 주파수도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지역 전력계통이 불안하다. 태양광발전 증가로 인해 전력계통의 최대 부하 시간도 캘리포니아처럼 석양 무렵의 저녁 시간대로 옮겨 가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대비하지 않으면 캘리포니아 순환 정전 같은 위기 상황이 우리에게도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과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20%, 2040년 30~35%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확대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 이행과 에너지전환 정책 주요 수단인 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 추세에도 부합한다.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력 시장 운영시스템 개선 고민은 덜한 것 같다. 전력 도매시장에서는 여전히 변동비반영(CBP)으로 하루 전 시장만을 고수하고 있고, 실시간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보완하고, 유연성 자원 가치를 제대로 보상해 줄 보조서비스 시장 운영도 미흡하다.

예전과는 달리 예기치 못한 대형 발전기 고장이나 탈락이 재생에너지로 인해 주파수 하락 폭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을 빠르게 확대하더라도 계통에서 출력 제한이 많아지면 설비 비효율성이 커진다.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력시장 운영시스템을 개선하고,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 대책 마련과 병행해서 이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캘리포니아처럼 대규모 정전 사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yslee@kee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