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낙규 생기원 원장 "키테크로 기관 정체성 찾고 제조혁신 미래 선도"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지난해 2월 취임한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은 3년 임기 중 1년이 마치 쏜살 같이 지나갔다고 했다.

제조업 성장에 직접 관여하는 유일한 연구기관을 이끌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나타난 당면 과제, 기관 운영에 관한 고민이 그를 재촉했다. 20여년을 생기원에 헌신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성장의 답'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를 넘는다. 세계 수위권이다. 이런 제조업의 정체는 국가경제 정체로 이어지는데, 곳곳에서 '제조업의 위기'를 거론한다.

이 원장은 '생기원 역할은 무엇인가' '어떤 영역에서 어떻게 기관 역량을 극대화해 발휘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답을 도출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이 원장은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에 '답을 내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 원장을 만나 앞으로 그가 생각하는 생기원과 앞으로 나아갈 길, 기관의 성장동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생기원은 어떤 곳이고, 어떤 방편을 무기로 국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기관 운영의 선결과제는 먼저 특성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 생기원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 제조 산업에 필요한 전반을 다루는 종합연구소다. 문제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점이다.

전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거꾸로 보면 특징이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이름에서부터 특정 분야를 상정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또 생기원은 10개 지역본부를 갖추고 있고, 45개 특화센터를 가졌다. 전국적인 조직 형태다. 내부 구성원에 다양한 학문 배경을 갖춘 이들이 모여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는 기관 정체성을 확립하고,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집중하는 응집력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 속에 탄생한 것이 '키테크(Key-tech)'다. 전 산업에 넓게 펼쳐진 기관의 특성을 모으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원이 가진 우수 기술들을 정리한 결과다.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키테크는 무엇인지 자세하게 소개해 달라.

▲생기원은 국가 연구개발(R&D) 혁신을 주도하고 소부장 국산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많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아주 유용한 기술이 많지만, 정작 알려지지 않은 것이 태반이다. 이 기술들이 기관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술의 면면을 국민과 과학계에 널리 알려, 활용도를 높이면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매우 요긴할 것이라고 믿었다. 지난해 7월부터 우수 성과와 유망 기술들을 발굴·분석해 선별해 왔고, 143개를 모아 키테크로 명명했다. 생기원의 과거와 현재를 이끌어오고, 제조혁신의 미래를 선도해나갈 대표기술이다.

키테크라는 이름에 많은 뜻을 담았다. 제조 산업 지능화를 여는 열쇠이자 중소·중견기업 기술혁신 마스터키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고 있다. 뿌리산업 등 전통 제조업 공정 개선부터 4차 산업혁명 기반 차세대 생산시스템까지 다양한 분야 기술을 모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20개 중점과학기술', 산업부 '차세대 100대 핵심기술'과도 연계된다.

일단은 143개로 시작했지만, 매년 업데이트 발표할 계획이고 기존 키테크도 육성을 지속할 계획이다.

-다양한 키테크 가운데 대표 성과를 꼽는다면.

▲소부장 관련 성과를 꼽고 싶다. 반도체 제조 가장 마지막 단계인 패키징 공정에는 대일의존도가 약 87%에 달하는 '에폭시 밀봉재'가 쓰인다. 이 소재는 열경화성 고분자 일종인 에폭시 수지 기반 복합소재인데, 반도체 칩을 밀봉해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새로운 화학 구조의 에폭시 수지를 독자 설계·합성하고, 세계 최고 수준 저열팽창특성 소재 기술 구현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에폭시 소재 기술은 보충재(실리카) 함량을 높여 열팽창계수를 낮추는데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 때 점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공정 용이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소재 공정 용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열팽창계수를 조절해 기존 기술과 차별점을 보였다.

모든 형태의 에폭시 소재 제조에 쓸 수 있고, 12인치 이상 대면적 패키징도 가능하다. 이는 일본산 소재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을 뛰어넘은 독보적인 원천기술이다. 이미 삼화페인트공업에 이전을 마쳤다. 현재 고순도·고수율 톤단위 생산시스템도 구축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Key-tech는 무엇일까?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제조산업 지능화'에도 역점을 두는 것으로 안다.

▲정부 디지털 뉴딜 정책에 생기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제조 산업 지능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자동화, 재택근무가 더욱 주목받으면서 이전보다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현실화에 속도가 더해졌다. 원래대로라면 10년 뒤 있을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핵심은 데이터다. 일전에 기업 대표와 대화 중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기업은 데이터를 남긴다'고 얘기했다. 데이터가 그만큼 귀중한 기업 자산이라는 취지다.

이미 글로벌 대기업은 빅데이터에 주목해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에 IT 기반이 취약한 중소·중견 제조기업은 이것에 더디다. 이들 데이터를 모아 의미 있게 쓰자는 것이 생기원이 말하는 제조 지능화의 출발점이다. 생산과정에서 축적되는 대량의 데이터로 공정을 최적화하고 첨단화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정 자동화는 물론이고, 인력이 바뀌어도 핵심 기술력을 이어가는 기반이 된다.

우리는 이미 3년 전부터 다양한 중소·중견기업 제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AI 기반 제조 지능화를 적용하고 있다. 사례도 있다. 동양다이캐스팅에 AI 기반 공정 최적화 기술을 지원해 3%가 넘는 불량률을 1%대로 낮추고 7200만원 비용 절감을 이뤘다. 마스크 제조기업 KS커뮤니케이션에는 딥러닝 영상패턴 분류 기술을 이전해 마스크 검수공정을 자동화했다.

제조산업 지능화는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요소다. 정부 한국형 뉴딜정책과도 긴밀하게 연계되는데, 향후 제조업 특수성을 고려해 기업규모 맞춤형 지능화 작업을 단계별로 수행할 계획이다. 현장을 아는 근로자들에게 AI를 공부시켜 현장 지능화를 이루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어려움은 있다. 많은 기업에서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데, 이를 기업 노하우를 빼간다는 인식이 있다. 노하우는 철저히 보호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로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기업에 사용료를 주고, 데이터를 공급받는 서비스 형태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최근 제조업 분야 '탄소중립' 구현이 화두다. 이에 대한 준비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에너지 효율화' '탄소 재사용' 3가지를 화두로 R&D를 추진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수소에너지를 유력한 대안으로 보고, 수입에 의존하던 수소 연료전지 국산화에 주력 중이다. 에너지 효율 분야에서는 생산현장별 맞춤형 지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에너지 공정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제조현장 탄소배출 최소화를 지자체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탄소재사용 분야에서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유용물질인 탄산칼륨을 얻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한 조직 개편도 했다. 생기원식 유연조직으로 '산업환경그린딜사업단'을 신설했고,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를 개편했다. 임무중심형으로 조직을 바꿔 다양한 신규 업무를 부여했다.

-이제 막 임기 1년이 지났다. 남은 임기 동안 목표와 비전은.

▲임기 동안 생기원을 국내 최고 기술 실용화 연구기관에서 '글로벌 수준 선진 제조혁신 전문기관'으로 도약시키는 것이 목표다. '엑셀런스 KITECH(생기원)' '트러스트 KITECH' '다이내믹 KITECH' '프라이드 KITECH'를 4대 전략으로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던 제조공정 지능화, 그린 산업생태계 및 수소경제 전환, 한국판 뉴딜정책 대표 어젠다 추진 등에 최대한 기여할 방침이다.

이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연구환경 조성이 필수인데, 예산 확보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지난해 생기원 총예산 대비 출연금 비중은 30.3%다. 25개 출연연 중 4번째로 낮다. 운영비 대부분을 자체수입으로 조달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자주 왕래하며 대외활동에 힘쓰고 방안을 찾고자 한다.

기관 위상을 높이는 전반적인 검토도 진행 중이다. 기관 정체성 확립이 이를 담보한다고 본다. 지원 분야가 한정된 정관을 포괄적으로 수정하고, 필요하다면 기관 명칭도 보다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낙규 생기원 원장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산공학 석사,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생기원에 20여년 몸담으면서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국내 주력산업 분야 생산기술 R&D에 몸 바쳤다. 단순히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제조·산업 관련 정책 수립에도 일조했다. 산업융합정책 어젠다 선정과 산업융합촉진법 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했고, 이 결과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 생기원 유치 성과도 이끌어냈다. 생기원 경기지역본부장, 융합생산기술연구소장 등을 역임했고, 2014년부터는 3D프린팅제조혁신센터장을 맡아 3D프린팅 기술이 국내 융성하는 것에도 일조했다.

천안=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사진=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