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겨울바람 이겨낸 설중사우처럼"…식물분류학계 거목 이우철 전 강원대 교수

이 전 교수 아호 딴 한국 최초 식물분류학 학술상
‘제1회 죽파식물분류학상’ 제정 학계 발전 큰 획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식물분류학자의 우리꽃 우리식물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잔잔한 감동을 낳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사단법인 한국식물분류학회(회장:현진오)에서는 ‘제1회 죽파식물분류학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무려 50년이 넘도록 학회 발전을 위해 공로가 컸던 이우철 교수를 기리고, 이 교수의 아호를 따 제정된 죽파식물학상의 1회 수상자 한림대학교 김영동 교수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죽파(竹波) 이우철 전 강원대학교 교수는 한국 식물분류학계의 거목(巨木)으로 불린다. ‘원색한국기준식물도감’ ‘식물지리’ ‘한국식물의 고향’ 등 묵직한 저서들을 집필해 식물분류학 분야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당대 최고의 분류학자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식물의 원기재문과 식물 분류 관련 문헌 자료 등을 식물 전문 연구기관인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기증해 생물주권 확보에 크게 기여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국립수목원 산림생물 표본관의 3번째 명예의 전당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령의 이 교수는 평소 그토록 소원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분류학 학술상이라는 감격스러운 자리에 직접 가지 못하고 자택에서 화상회의 솔루션 ‘줌(Zoom)’으로 참여했다.

◇ 죽파 이우철 교수를 만나다…老 교수의 일상

죽파 이우철교수의 자택이 위치한 파주 두일마을 패랭이길.
<죽파 이우철교수의 자택이 위치한 파주 두일마을 패랭이길.>

행사당일 이른 아침 파주의 한적한 두일마을 전원주택 단지로 노(老) 교수를 만나러 갔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의 이름도 어디선가 꽃냄새가 날 듯한 ‘패랭이길’. 나즈막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식물학자 이우철교수와 평생배필 오경옥여사.
<식물학자 이우철교수와 평생배필 오경옥여사.>

이교수의 자택은 이 동네에서도 유난히 소박하고 마당이 넓었다. 눈이 쌓인 정원 한 켠, 겨울바람에 삐걱이는 그네에는 ‘죽파쉼터’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우리집은 초봄부터 여름까지 만발한 꽃들이 눈길을 끌죠. 샛노란 산수유, 희고 풍성한 조팝나무, 붉은색 꽃아그배나무, 화려한 자색목련까지 저마다 봐달라고 다투어 피어납니다. 하지만 난 분홍의 앵초나 노란 피나물처럼 수줍고 작은 꽃들에 더 시선이 갑니다. 토끼풀, 괭이밥 같은 야생화들까지 100여종이 넘는 꽃들이 피고 지는 걸 보면 하루 해가 짧아요. 겨울 끝자락엔 매화, 동백, 영춘화, 수선화를 설중사우(雪中四友)로 치죠. 아침에 일어나면 정원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꽃모닝~ 안녕들 하신가~”

노 학자의 소박한 마당 한켠 그네에 매달린 ‘죽파정원’ 표지.
<노 학자의 소박한 마당 한켠 그네에 매달린 ‘죽파정원’ 표지.>

꽃 이야기를 꺼내며 기자를 반긴 이우철교수는 본인을 죽파선생이라고 소개했다. 동네 아이들에겐 꽃 이름 가르쳐주는 죽파 할아버지로 불린다고 했다. 지금은 외래종 꽃들도 정원에 많이 심었지만, 현역시절의 죽파선생은 한반도 자생식물의 연구와 채집, 학술저서 집필에만 오롯이 시간을 쏟았다.

◇ 아내가 본 남편 ‘이우철’은

5년 전 파주로 거처를 옮긴 후 이 교수는 평생배필 오경옥 여사와 한가하고 고즈넉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두일마을 주민들은 이 교수 부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매일 오후 어김없이 집을 나서 패랭이길, 꽃창포길, 책향기숲길까지 동네 곳곳을 손을 꼭 잡고 다니면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 때문이다.

“산책 길에 만나면 늘 목례하고 지나치던 분이 작년 어느 날 막 뛰어오더니, 우리 뒷모습이 하도 다정해보여 사진을 찍었다면서 휴대폰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리고 귓속말로 묻더군요. 양로원에서 두 분이 만난거 맞죠? 거기가 어디에요? 라구요. 오래 묵은 부부가 닭살스럽게 손까지 잡고 다닐 리는 없고 늙어서 재혼이거나 양로원에서 만나 연애하는 사이로 알았답디다. 여보,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할망구요. 나처럼 잘 해주는 할아범은 세상에 둘도 없지...”라며 이 교수는 능청스럽고도 애정어린 눈길로 아내를 쳐다본다.

동네 이웃이 찍어준 이 교수의 뒷모습. 작년 가을만 해도 건강이 허락해 매일 산책길을 나섰다.
<동네 이웃이 찍어준 이 교수의 뒷모습. 작년 가을만 해도 건강이 허락해 매일 산책길을 나섰다.>

하지만 오 여사는 칭찬 대신 핀잔이다. 60년이 넘도록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식물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은 무심한 남편이란다.

“젊은 시절 이 양반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면 식물채집을 따라다닐 수 밖에 없었어요. 산으로 들로 나간다니, 처음엔 재미있을 줄만 알았죠. 그런데 웬걸요. 로맨틱 코미디 찍으러 갔는데 알고 보니 공포영화라고나 할까요. 새똥 뒤집어쓰고 산모기에 뜯기다 집에 돌아와보면, 발엔 물집이 잡히고 거머리에 물린 날도 많았어요.”라며 손사레를 친다.

녹쓸지 않은 무쇠다리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국의 산을 누볐던 70대의 이우철 교수.
<녹쓸지 않은 무쇠다리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국의 산을 누볐던 70대의 이우철 교수.>

하지만 무거운 야책을 메고 하루종일 산을 탄 남편은 집에서도 그날 채집해온 식물을 애지중지 말리고 분류하느라 아플 틈이 없었다. 채집한 식물을 누르는 도구인 야책 때문에 벌겋게 부어오른 어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소중한 보물 다루듯, 식물표본을 보고 또 보는 남편이 오 여사는 더 신기했다.

“이 양반은 산을 하도 잘 타고 다녀서 날다람쥐라고들 했어요. 아무리 걸어도 힘든 줄 몰라 '무쇠다리'라는 별명도 붙여줬죠. 세월엔 장사가 없는지 요즘엔 많이 쇠약해 지셨어요. 오늘같이 좋은 날 시상식에도 못가셨네요"라며 남편을 쳐다보는 오여사의 눈빛이 애잔하다.

◇ 식물 분류학에 한 획을 그은 ‘식물학자 이우철’

9시에 시작된 시상식을 거실에서 줌으로 지켜보는 내내 노 학자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김영동 교수의 수상소감을 들을 때는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1회 죽파식물분류학상을 수상한 한림대학교 김영동 교수.
<제1회 죽파식물분류학상을 수상한 한림대학교 김영동 교수.>

"뜻깊은 상을 처음으로 수상해 영광입니다. 학회지 발간을 위해 수고한 교수님들과 불철주야 고생한 연구실 학생들 덕분입니다"라고 수상소감을 이어가던 김영동 교수도 이우철 교수와의 오랜 인연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잠시 눈물을 훔쳤다. "젊은시절 강원대학으로 찾아갔을 때 환대해주시고 식물분류학은 비전이 있는 학문이라고 목소리 높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롤 모델로 생각해온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이런 상까지 받게 되니 울컥하는군요. 식물분류학을 이토록 사랑하는 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후배들은 힘이 되고 자부심을 느낍니다.“라면서 김교수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우철 교수는 매년 식물분류학상 시상금 천만원을 학회에 기증하기로 약속했으며, 사후에는 자녀들이 뜻을 이어주기를 당부했다. 어떤 이유로 노(老) 학자가 이렇게 학술상에 애정을 쏟는 것인지 궁금했다.

죽파식물분류학상 심사위원장 강원대학교 유기억 교수.
<죽파식물분류학상 심사위원장 강원대학교 유기억 교수.>

“식물분류학은 식물의 족보를 연구하는 기초과학이에요.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들의 계통과 연관관계를 밝히는 학문이죠. 자생식물의 데이터를 축적해 연구하면, 같이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안 난다는 이유로 점점 외면받고 있는 것 같아 이 늙은이가 속이 탑니다"라고 말하는 이우철 교수의 목소리는 노환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쩌렁쩌렁했다.

식물분류학은 졸업후 취직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학에서도 비인기학과라고 한다. 학자들의 연구의욕을 고취하는 논문시상제도도, 대기업의 산학연계 지원도 거의 없다.

한국식물분류학회는 지난 1968년 12월 창립되어 학회지를 발간해온 유서깊은 학술단체다. 지난 50여년 동안 지령 163호까지 이어져온 학회지는 한국 식물분류학의 미래를 위해 가장 귀중한 자산이라고 이교수는 강조한다.

분류학은 SCI급 논문을 발표하기가 쉽지 않은 학문이다.  단기간에 논문을 여러 편 내거나 다른 논문에 인용되기도 어렵다. 채집과 분석에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한다.

이우철교수는 30대 초반의 조교시절 한국식물분류학회 설립에 힘을 보탠 창간멤버이자 학회장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은퇴후에도 백발 성성한 노구를 이끌고 학회 발표장을 매년 찾아 다녔다. 보청기를 끼고 앞자리에 앉아도 발표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논문을 응원하고 후배 학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었다.

이제 더이상 집밖 외출이 쉽지 않은 고령이 되니 우수 논문에 매년 천 만원을 지원하는 상을 만들어 멀리서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고 한다.

한림대 김영동교수(중) 현진오 식물분류학회장(오).
<한림대 김영동교수(중) 현진오 식물분류학회장(오).>

결국 ‘죽파식물분류학상’은 이우철 교수와 가족이 사단법인 한국식물분류학회에 기증한 기금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식물분류학 분야 최초의 학술상으로 제정됐다. 이교수의 제안을 식물분류학회 현진오회장이 선뜻 받아줬고, 이 교수가 가장 아끼는 제자인 강원대학교 유기억 교수가 심사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행사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에 대한 연구는 일제시대에 시작됐어요. 일본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1908년부터 한반도 전역을 탐사해 우리나라의 식물 분포를 연구했지요. 물론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인 금강초롱꽃의 학명이 ‘Hanabusaya asiatica, Nakai’가 된 건 식민지 한국에 부임했던 초대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타다와 발견자인 나카이의 이름을 땄기 때문입니다."라고 이 교수는 말을 이었다.

식물분류학의 중요성은 단지 생존하고 있는 식물들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땅의 식물을 외면하면 이처럼 외국 학자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땅에서 자라난 식물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일, 우리나라 꽃에게 다정한 우리 이름을 붙여주는 일, 그리고 함께 살아갈 우리 후손들이 더 건강한 생명력을 갖도록 식물데이터를 축적하고 연구하는 일, 모두 식물분류학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 기초가 되는 학술논문이 매년 더욱 깊이있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라고 이 교수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