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EMR 인증제의 방향성

이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핵의학과 교수)
이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핵의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전자의무기록(EMR) 보급은 다른 국가들보다 일찍 시작됐다. 보급률 또한 매우 높은 편이다. 국내 EMR 개발 및 보급 사업은 민간을 중심으로 각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지거나 병·의원들의 사용편의성 요구를 반영해 발전해 왔다. 이는 정부가 주도한 가운데 중장기적 계획을 기반으로 EMR를 보급·발전시켜 온 미국과 대비된다. 국내와 어떠한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비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비교해 미국은 EMR 개발을 시작한 시점이 늦다. 현재까지 보급도 더딘 편이다. 그럼에도 미국 EMR 사업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EMR를 의료기관에 도입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라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가 어렵다.

의료기관이 자체 또는 이들 의견 중심으로 개발된 EMR는 그 목적이 개별 의료기관의 사용편의성이나 효율성 증대에 맞춰질 공산이 높다. 국내의 경우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미국의 EMR 도입 및 보급 사업은 국민 건강과 헬스케어, 바이오 연구, 산업 발전을 위해 헬스케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장기적인 목표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결국 EMR 도입은 작게는 개별 의료기관의 의료 품질 향상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서 시작해 크게는 표준화된 데이터의 활용과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확보한다는 광범위한 목표를 포함한다. 물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국가가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통해 환경을 조성했다.

이와 비교해 우리나라는 사용자인 병·의원 대부분이 EMR에 큰 비용을 투자할 상황이 되지 않고 편의성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100개가 넘는 EMR 기업이 저가 경쟁에 나서고 있어 자체적으로 데이터 표준화나 시스템 품질 개선 등 방향으로 발전하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EMR는 단순히 병원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넘어 보건의료 분야의 발전을 위한 인프라적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시장 논리에만 맡겨서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지난해는 유난히 의료정보 침해 사건이 많았다. 이러한 사건은 앞으로 더 증가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병·의원의 EMR 사용 환경은 상당수가 보안에 취약하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이마저도 결국 병·의원의 부담 아래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 각자가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EMR 인증제'라 할 수 있다. EMR인증제는 '제품 인증' '사용 인증'으로 분류됐다. 제품 인증의 목적은 국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EMR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기능, 성능을 인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EMR의 기본 요건을 확립해 질적인 발전이 가능한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사용 인증은 EMR에 탑재되어 있는 기능을 각 병의원에서 어떻게 잘 사용하고 있고, 정확한 사용을 통해 의료 품질이 개선됐는지를 인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EMR 제품 인증에서 상급종합병원용 EMR에 'closed loop medication administration'(CLMA)을 포함한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실제로 해당 기능이 제품에 포함됐는지를 확인해서 인증해야 한다. 이렇게 인증된 EMR를 상급종합병원에서 이용한다면 실제 CLMA 기능을 얼마나, 어떤 범위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사용 인증 평가에서 검증하는 식이다.

물론 이러한 인증제를 개발하고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종별·제품별 적합한 인증 기준과 평가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전문적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EMR가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재정적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같은 방향으로 우리나라 EMR 산업이 발전하도록 지속 노력한다면 국내 보건의료 데이터 환경도 개선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자 안전과 의료 품질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IT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보화실장(핵의학과 교수) 01954@snub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