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와 디지털 사피엔스]우크라이나의 디지털 전쟁

“스타링크 인공위성 인터넷 개통, 추가 위성 준비 중. - 일론 머스크”, 우크라이나 디지털혁신부 차관 알렉스 보르냐코프는 트위터로 머스크에게 긴급 인터넷 연결을 요청했고, 머스크는 신속한 트윗으로 화답했다. 보르냐코프는 70개 이상의 IT 회사에 디지털 참전을 요청했다. 소셜미디어, 메신저, 동영상, 웹, 푸시알람, 배너를 포함한 모든 매체가 동원됐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로 공식 후원계좌를 개설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종주국이라던 러시아의 정보전 능력도 이번만큼은 심각한 자중지란에 빠졌다. 빅테크는 등을 돌렸고, 거센 국제적 비난이 러시아로 쏠렸다. 어나니머스는 러시아 채널을 해킹했고, 러시아투데이는 1억개의 기기를 통한 대규모 디도스 공격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종주국이다.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시에도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정부 웹사이트를 차단하는 한편 상대의 군사력 분산, 심리적 교란, 허위정보 대량살포와 잡아떼기 등 현란한 전략으로 국제사회의 대응을 조기에 침묵시켰다.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공격해서 중서부 수만 명의 전원을 차단했다. 동부 돈바스, 도네츠크 침투 시에도 효과적인 정보전술로 국제사회의 반발을 좌절시켰던 과거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쟁 능력과 이번의 실패는 극명히 대조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Like War' 공동저자인 에머슨 브루킹은 침공작전 규모가 너무 컸고, 수 개월간 넓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군비를 축적하고 19만 병력을 동원하는 큰 전쟁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침공 날짜를 미리 공개하며 강력한 선제적 통합정보전으로 러시아의 선전을 무력화하고, 서구와 전 세계의 여론을 집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항전 동영상은 온국민의 저항의지를 결집했고, 국내외 의용군이 속속 모여들었다. 민간 위성과 스마트폰으로 전장의 모습이 생중계되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뉴스별로 대응하는 디지털 정보전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는 방송 송출 타워를 직접 포격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차단시켰다. 일명 '러시아 스캔들'로 2018년 상원 청문회에 참석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악용하려는 러시아 세력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군비경쟁 중이다. 그들의 힘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증언한 때를 상기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러시아 스캔들'은 성격분석 퀴즈 앱으로 사용자와 친구 목록을 수집, 약 50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로 도널드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유권자를 향했던 선별적 선거운동이다. 이번에는 페이스북이 러시아 매체의 광고 운영을 차단했다.

10년간의 홍보로 '우크라이나는 나치'라는 등식이 국내에는 뿌리내렸지만 러시아의 정보전 영향력은 자국내와 TV 방송으로 좁혀졌다. 3월 4일 국영방송을 제외한 모든 언론사는 폐지됐다. 서방의 모든 동영상은 딥페이크고 모든 사진은 포토샵이라고 보도되며, 우크라이나인의 잔학행위가 방송된다. '특별작전'에 대한 '가짜 정보'에 15년 징역형 법률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는 자국민 설득을 위한 것으로 보이며, 국제 청중 설득에는 자신이 없어 보인다. 나이든 분들이 TV에서 정보를 얻을 공산이 더 높아서 전쟁에 대한 인식의 세대차도 더 악화될 것이다. 이제 수동적 TV 시청으로 세상을 읽던 습관은 낡아졌다. 반면에 서방 회사들이 러시아 매장을 폐쇄하는 것도 역으로 러시아인이 해외정보 수집과 자생적 비평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서방의 러시아 매체 차단도 역효과만 유발할 수 있다. 러시아의 인터넷을 차단하라는 요구처럼 무작정 '진실 차단'은 답이 아니다. 시민사회와 단절되는 큰 역효과를 낳는다.


하이브리드 전쟁의 종주국 러시아는 어쩌다 사이버전에서 이런 수세에 몰렸을까. 대규모 작전을 완전 비밀리에 기습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쟁인지 몰랐다. 훈련하러 왔는데 전쟁터였다”는 러시아 병사의 진술처럼 참전 군인도 보급과 작전부대도 진짜 전면전인 줄 몰랐다고 한다. 크렘린궁의 소수만 믿었고, 작계 참모들조차 전면전도 아닌 가상 작전에서 서방의 결집을 과소평가하여 '우크라이나의 환영을 받는 해방군, 희생 없는 승리'라는 대책 없는 보고서를 올린 것이 이 엄청난 민간 희생의 원인이라면 적을 속이려던 기만전략이 자기편마저 속인 것이다. 이제 세계는 둘로 갈라졌다.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와 디지털 사피엔스]우크라이나의 디지털 전쟁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