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K-콘텐츠 초격차, 문화 융합 R&D로 선도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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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영국 월간지 '모노클'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세계 2위로 선정했다. 2019년 영국 컨설팅 기업 '포틀랜드 커뮤니케이션'이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19위로 꼽은 이후 1년 만이다.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력을 보여 주는 결과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와 핑크퐁, 아기상어 제작사 더핑크퐁컴퍼니를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보여 주는 사례다.

한국 소프트파워는 K-팝, K-드라마, K-영화를 필두로 한 K-콘텐츠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빠르게 위상을 높여 왔다. 그러나 소프트파워 상승 요인은 단순히 문화력뿐만 아니라 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요소 간 결합으로 설명해야 한다. 소프트파워 개념을 제시한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소프트파워는 문화, 예술, 기술, 과학, 교육 등 인간의 창조적 산물과 연관된 모든 분야를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소프트파워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임에도 군사력 등 유형의 강제력을 동반하는 하드파워보다 영향력이 더 큰 이유는 문화와 기술 등 다양한 요소 결합인 창조적 산물로서 무한 확장성을 띠기 때문이다.

K-콘텐츠가 이러한 소프트파워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도 문화와 기술이 결합해서 이뤄낸 확장성에 있다. 콘텐츠 본질은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겪게 하는 창의성과 감동을 선사하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이는 기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창의성과 스토리텔링, 기술 결합으로 콘텐츠 표현력 및 완성도가 확장되는 것이다. K-콘텐츠는 시공간을 넘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콘텐츠가 물리적 지역과 국경 한계 없이 세계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현상도 시공간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화와 콘텐츠 기술의 만남은 잠재된 문화력의 가능성을 무한히 촉발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자 K-콘텐츠산업 초격차화를 위한 동력이다.

에이펀인터랙티브 아뽀키
에이펀인터랙티브 아뽀키

정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은 문화기술 연구개발(R&D) 지원사업으로 영향력 있는 글로벌 K-콘텐츠를 배출하고 있다. '신과 함께' 1·2 시각특수효과(VFX)를 담당한 덱스터스튜디오는 문화기술 R&D 지원으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듭했다. 그 결과 '신과 함께'에서 압도적이고 실감 넘치는 지옥 풍경으로 1000만 관객을 놀라게 했다. 2018년에 발매된 BTS 곡 '아이돌'에는 문화기술 R&D로 개발한 국악 디지털 음원 라이브러리가 활용돼 세계 K-팝 팬들에게 국악의 매력을 알렸다.

최근에는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미래 콘텐츠를 선보였다. '에이펀인터랙티브'는 실시간 렌더링 기술로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K-팝 가상아이돌 '아뽀키'를 개발해 국가연구개발 우수 성과 100선에 선정됐고, CJ ENM으로부터 100억원대 투자를 유치했다. AI 휴먼기술 기업 '딥브레인AI'는 AI 아나운서 기술로 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AI 가창합성 개발 스타트업 '수퍼톤'은 고인이 된 김현식, 거북이, 임윤택, 유재하 등의 목소리를 복원해 하이브로부터 4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ET시론]K-콘텐츠 초격차, 문화 융합 R&D로 선도

문화기술 R&D는 타 분야 R&D에 비해 기술적경제적으로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한다. 최근 3년 동안의 문화기술 R&D는 과제 지원금 10억원당 5.45개의 특허 출원·등록을 하고 4건 이상의 사업화를 달성했다. 국가 R&D 전체 과제 기준 10억원당 특허 출원등록 2.52건, 사업화 1.38건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그러나 문화기술 R&D가 첨단 기술과 콘텐츠의 융합을 통해 문화·기술·경제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만들고 미래를 선도하고 있지만 전체 예산 투입 규모가 작아 대형 성과로 확장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콘진원은 지난해 11월 문체부 산하 R&D 사업을 모아 문화체육관광기술진흥센터를 출범했다. 콘텐츠, 저작권, 스포츠, 관광 등 분야별로 진행해 온 R&D 기획·관리·평가 기능을 통합한 조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센터를 통해 문화체육관광 분야 R&D 전문성을 높이고 융·복합 과제 발굴 기능을 강화, K-소프트파워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센터에서는 메타버스 기반의 글로벌 가상공연을 위한 핵심 기술, 저작권 보호 및 차세대 콘텐츠 저작권 기술 개발, 스포츠 산업 혁신 기반 조성, 관광서비스 혁신성장 연구 등 다양한 문화체육관광 분야 R&D를 신규 지원한다. 문화체육관광 분야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 과제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혁신 성과 창출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아가 문화체육관광 각 분야의 현장에서 원하는 새로운 기술 수요를 발굴하기 위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수퍼톤의 김현식 복원 공연
수퍼톤의 김현식 복원 공연

올해 문화체육관광 R&D 예산은 1323억원이다. 전년 대비 16.1% 증가했다는 수치로 보면 소프트파워 강화를 위한 투자 의지를 보이는 듯하다. 현실은 국가 R&D 전체 예산의 1%도 채 안 되는 0.45% 규모에 불과하다. 지금 K-콘텐츠산업에 부여된 중요성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K-콘텐츠 산업은 빠르게 성장해 이미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초격차화 기로에서 새로운 동력을 필요로 한다. 콘텐츠와 첨단기술 융합은 K-콘텐츠 산업 초격차를 만들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무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금 세계인은 또다시 자신들을 놀라게 할 새로운 K-콘텐츠가 무엇일지 기대하고 있다. 한껏 상승한 이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초격차화 기회는 한발 멀리 달아날 수 있다. 지금 K-콘텐츠 산업 초격차화 문턱에서 문화 융합 R&D 투자 확대는 지체할 수 없이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조현래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조현래 원장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제36회 행정고시 합격 후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 예술, 관광, 소통 등 전 분야에서 정책 경험을 쌓은 문화행정 전문가다. 문체부에서는 콘텐츠정책국장, 관광산업정책관, 국민소통실장, 종무실장 등을 역임했다.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학위와 KDI 국제정책대학원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고, 한성대 행정학 박사를 수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는 지난해 9월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