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블록체인과 벤저민 버튼의 버터플라이 효과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블록체인과 벤저민 버튼의 버터플라이 효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달릴수록 시간은 느려진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사람이 좀 더 오래 산다는 뜻이다. 실제로 인공위성의 시간은 지상보다 느려서 정교한 GPS 운영에는 미세한 시간차 보정이 필요하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로켓을 점점 더 크게 만들면 광속을 넘어설 것도 같지만 속도가 빠를수록 질량이 커져서 결국 무한대의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사이버 스페이스'란 단어는 소설가 윌리엄 깁슨이 창안했다. 1984년 데뷔작 '뉴로맨서'에서 게임에 몰입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기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조직을 회로와 연결하여 그 속에서 진정으로 살고 있다고 느껴 그 삶의 공간을 '가상공간'으로 명명했다. 원자로 이루어진 물리적 공간이 아닌 '비트로 이루어진 새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신대륙 발견과 대항해 시대의 개막처럼 가상공간의 영토 개척과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고, 대략의 승부도 갈렸다. 이제 너무도 친숙해진 가상공간이 진정한 삶의 터전임은 명확하다.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과 불편함에서 해방된 더 편하고 즐거운 곳이 되었다.

언젠가 일본 도쿄대에서 'Bio History'라는 학과명을 보고 크게 놀란 일이 있다. 생물학은 자연과학인데 웬 역사학? 생명은 이 방향으로 진화할 수도 있었고 저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 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오늘'로 '수렴'했다. '우연과 필연'으로 노벨상을 받은 프랑수아 자코브와 자크 뤼시앵 모노가 영감을 준 학과명일 것이다. 생물학은 시간의 '역사성'에 무심한 수학, 물리학과 달리 '역사학'에 더 가깝다. 매 시점 펼쳐지는 수만 가지 서로 다른 가능성 중 단 하나의 경로가 선택되기를 무한반복하며 결국 '오늘'로 수렴한다.

가상공간의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타임 태그가 좀 있지만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으로 리셋된다. 은하계처럼 스스로 돌아가는 '사이버 시공간'은 없다. 블록체인은 앞 블록에 뒤 블록을 '순차적'으로 결합해서 '불가역성', 즉 가상공간에 결핍된 '시간성'을 제공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꿈 외에 시간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다. 세상 거의 모든 일은 시간이 한다. 웹 3.0에 대한 복잡한 찬반과 논쟁에도 블록체인의 미래를 믿는 이유다. 위·변조 불가, 원본성 보장 등 블록체인의 모든 '신뢰성'은 '순차적 비가역성', 즉 가상공간의 '역사성'에서 나온다.

영화 '버터플라이 효과'는 수많은 '가능한 미래'가 존재함을 보여 준다. 주인공들은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로 끔찍하게 달라진 미래와 마주친다. 원래 '버터플라이 효과'는 복잡계를 설명하는 이론이지만 영화 '버터플라이 효과'는 시간의 '불가역성'을 더 잘 보여 준다. 생명의 진화는 무수한 '버터플라이 효과'를 반복해서 관통해 온 결과다. 시간은 공간과 달리 왜 불가역적인가? 왜 아침에 나선 집으로는 돌아갈 수 있지만 아침 식탁의 행복한 시간으론 돌아갈 수 없는가?

시간의 '버터플라이 효과'와 '블록체인'의 비가역성 근원은 '순차적 가지치기'다. 생명이 자손을 펼치듯, 블록체인이 트리를 펼치듯, 시간과 질량이 물체의 속도에 저항하듯 버터플라이 효과로 수많은 가지치기를 반복하면 따라서 내려가기는 쉽지만 '벤저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슬러 오르려면 기하급수적으로 펼쳐지는 무한대의 정보량을 다 되돌려야 하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우리는 이제야 '비트로 구성된 가상 시공간'의 초기 모습과 만났다. 가상공간은 원자로 구성된 물리공간이 겪은 태초의 혼돈기를 지금 막 지나고 있다. 인터넷은 결국 '시간이 없는 자유공간'과 '시간의 역사성이 지배하는 신뢰공간'의 둘로 양분될 것이다. 3D 기술로 물리세계를 '모사'하는 '메타버스'가 그 '중간계'로 남을 것이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사랑의 힘으로 거꾸로 간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