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집 나간 토끼는 갈 곳을 잃었다

정치권에서는 유권자들을 흔히 토끼에 비유한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집토끼', 중도 혹은 상대 진영 지지성향이 있는 유권자는 '산토끼'로 부른다. 그리고 매번 선거 때마다 중도확장을 외치며 집토끼보다 산토끼 잡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현재 국내 정치 양대 정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집토끼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산토끼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여 지지율을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집토끼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지지정당 철회와 이탈은 구태정치에 대한 염증이 이유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정권이 교체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정치는 아직도 대통령선거 때 머물러있는 듯하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각 정당의 최대 리스크는 여전히 그들의 리더에 있는 탓이다. 대선 당시 양대 후보들의 언행 실수, 배우자 비리 의혹을 둘러싼 구설·공방이 여전히 정국의 스모킹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명은 대통령, 다른 한 명은 정당 대표로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온 나라를 관통한 '혐오정치'가 그대로 있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다음 달이면 새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양 정당은 “성역은 없다” “금도를 넘었다”며 상대 머리에 칼날을 겨누고 역대 최악의 대치를 하고 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질문 모습.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질문 모습.>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관련 의혹은 쟁점 이슈로 떠올랐다. 여기에 북한 어민 강제북송 등 대북 이슈 관련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국정감사 증인출석 얘기까지 나온다. 여야 간 내전이 장기화돼 공격 수위만 계속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서로가 같은 우를 범하고 서로가 같이 비난하며 '내로남불'을 주고받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 당의 내부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른바 '윤심(心)'과 전 당대표의 갈등으로 비대위를 두 번이나 출범시키는 촌극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마치고 정상화에 노력하고 있지만 팬덤정치의 딜레마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선 당시의 상황과 판박이다. 선진 국회, 정치 개혁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고 어느 것도 변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았다.

곳곳이 난맥상이니 국회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무리수도 늘어간다. “지인에게 들었다” “그런 소문이 돈다”로 시작하는 '카더라 정치', 지명도를 바라며 온라인에 온갖 공치사를 자랑하고 의회에선 튀는 행동에 열을 올리는 '관종 정치'만 늘고 있다. 입버릇처럼 “민생에는 여야가 없다”는 소리가 '구분이 없다'가 아닌 '그냥 없다(無)'로 들리는 이유다. 토끼들의 눈치는 빨라졌고 입맛은 까다로워졌는데 집 주인의 맹한 행동이 도를 더해가니 떠날 수밖에 없다.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집을 떠난 수많은 토끼들은 '산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다른 집을 찾아볼 것이가?'를 고민하며 길을 헤매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與집도 野집도 영 갈 곳이 못 되다 보니 산도 못 가고 떠돌기만 하는 '길토끼'가 늘고 있다.

정치권은 앞서 대선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역대 최악의 대선'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권자들 서로서로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했던 선거였다. 다수의 집토끼는 이미 그 당시에도 사는 곳이 영 마땅치 않았던 셈이다. 여야 모두 남을 비판하기에는 자체 흠결이 너무 많다. 상대를 공격하는 데 들이는 노력의 절반 정도라도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고 약점을 개선하는 곳에 들여야 한다.
집토끼는 내가 사는 곳이 중요하지 다른 집이 망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 정치권이 집 단장부터 신경 써야 집 나간 토끼가 돌아올 것이다.

[ET시선]집 나간 토끼는 갈 곳을 잃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