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첨단 산업 '블랙홀' 된 미국

LG화학이 4조원을 들여 미국에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짓는다. 170만여㎡ 부지에 연산 12t 규모로 미국 내 양극재 공장 가운데 최대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LG화학의 미국 투자는 예상된 절차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이 이미 미국에 다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오하이오주에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설립한 얼티엄셀스 1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테네시주에는 2공장, 미시간주에는 3공장을 각각 짓고 있다. 올해 초에는 미국 스텔란티스와 함께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합작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고객이 있는 곳, 즉 시장 진입을 위해 기업이 현지에 진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미국은 자국 내 제조에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 기업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센티브를 받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짐으로써 거대 시장을 놓치게 된다.

문제는 미국이 첨단 산업 투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LG뿐만 아니라 SK·삼성도 미국 내 배터리 투자를 강화하고 있으며, 반도체 부문에서도 대미 투자가 늘고 있다. 자국 중심으로 첨단 산업을 재편하려는 미국의 영향, '제로섬 게임'과 같이 해외 투자가 늘면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으로 기업의 투자를 흡수하자 위기를 느낀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자체 보조금으로 맞불을 놓는 방안을 고려하면서 무역전쟁이 점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U는 자체 보조금으로 자국 산업 위축을 만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도 첨단 제조 기지가 계속 해외로 빠져 나간다면 제조업 공동화 등 국내 산업 기반이 취약해지는 상황을 맞게 된다. 산업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는 전략과 큰 그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