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50〉모순의 혁신학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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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矛盾). 잘 알려진 고사에서 왔다.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팔던 이가 자신의 창(矛)과 방패(盾)가 각각 매우 예리(利)하고 단단(堅)하다고 자랑하다 보니 이런 사달이 났다. 객쩍은 말처럼 들리는 이 얘기의 가벼움과 달리 출처는 범상치 않다. 한비의 법가적 정치사상을 담은 한비자의 한 대목이라고 한다. 한비는 요순의 덕치에 양립할 수 없는 사례를 들어서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하려 한 것처럼 보인다.

혁신에는 여러 주제가 있다. 이들 가운데 태반은 상식과 닿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은 상식을 극복하고서야 만날 수 있다. 아니 상식을 뿌리치고 그 바깥에 서고서야 찾을 수 있기도 하다.

2000년 초 무렵 보험업에서 잔뼈가 굵은 리처드 레프틀리(Richard Leftley)는 어느 재보험사에서 발간한 통계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통계치 사이에 이상한 부조화가 보였다.

자연재해로 말미암은 피해자 수와 보험금 지불금액을 비교해 보니 피해가 가장 많은 국가는 정작 지급액 순위에 들어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험이 필요한 열악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보험료를 낼 만한 처지가 안 된 것이었다. 레프틀리는 이런 곳에 보험을 팔면 어떠냐고 동료들에게 제안해 본다. 하지만 웃음과 함께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이 비즈니스 규칙은 이런 거야. 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보험금도 없다는 것이지.”

레프틀리는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가 취급하고 있던 보험을 저렴한 버전으로 판매해 본다. 하지만 가입자가 별로 없었다. 그는 두 가지를 바꿔 보기로 한다. 첫째는 휴대폰으로 가입할 수 있고, 둘째는 보험료가 공짜였다. 휴대폰에서 일정 통화료를 선납하면 통신사가 보험료를 대신 냈다. 거기다 저렴한 비용에 배우자나 가족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추가 비용은 월 3센트에서 1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고객을 충분히 모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가입 전화의 80%가 중간에 끊어진 걸 알게 된다. 원인은 나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을 묻는 질문에서 태반이 가입을 포기했다.

어떤 나라에선 자기 나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 한 명 답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이 영국인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레프틀리가 찾은 답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었다. 보험 비즈니스에 가입 서류도 없고, 아는 것이라곤 가입자 전화번호뿐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고객들이 보험이란 걸 서서히 학습했고, 레프틀리가 설립한 마이크로인슈어(MicroEnsure)는 5600만명의 가입자를 얻게 됐다. 그것도 가장 가난한 시장에서, 고객의 85%가 생애 첫 번째 보험가입자다. 여기에 80%의 시장에선 이윤을 남기며 영업하고 있다.

우리에게 식빵이란 이미 먹기 좋게 썰어 놓은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건 1928년에나 선보인 혁신 제품이었다. 미리 썰어 놓은 식빵 광고는 이해에 처음 선보였고, 당시 문구는 “미리 얇게 썬 식빵이 여기 있습니다”였다.

1930년이 되자 콘티넨털 베이킹(Continental Baking)사는 미리 얇게 썬 식빵에 원더 브레드(Wonder Bread)란 상표를 붙여 판매한다. 이것은 미국 소비 생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때부터 남편과 자녀의 점심 도시락통에 샌드위치가 늘어나고, 토스트가 아침 식사용으로 자리 잡는다. 지금 같은 빵 사랑은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토스터가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된 것도 이다음이다.

상식의 바깥 공간, 부조화가 상식인 공간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누군가는 이곳을 예외의 공간이라 부르지만 내가 찾은 해답은 다르다. 혁신 세계에서 이곳에 가장 어울리는 명칭은 다름 아닌 '혁신 그 자신' 아닐까 한다.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50〉모순의 혁신학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