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조달(공공조달)은 일반 국민에게 그리 친숙한 개념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면서 수강생에게 국가조달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보면, 대부분 잘 모르고 있거나 혹은 조금 알고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품 등을 구입하는 단순구매업무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조달은 2020년 기준 정부지출의 약 30%, 국내총생산(GDP)의 약 7.5%에 이르는 연간 176조원 규모로 집행되고 있고 조달 참여 기업만 47만여 개사에 육박하는 등 우리나라 국가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국가재정정책 분야라 할 수 있다.
국가조달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서비스·건설)을 구매(또는 계약)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정부예산으로 집행되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주요 수단인 동시에 수준 높은 공공서비스 제공으로 국민후생을 높이는 사업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민간구매와 달리 공정성·투명성·경제성 모두를 충족시키면서 추진되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 국가조달정책은 1960년대 해외 원조물자의 효율적 배분 및 관리를 위해 시작되었으나 이후 산업화 시대를 맞으면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및 산업 기반 구축과정에서의 예산 절감과 효율성 제고에 중점을 두고 추진됐다.
이후 중소기업 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제도(1997년)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2007년) 시행을 통해 중소기업 육성 및 판로지원을 위한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2008년) 및 여성기업제품 우선구매제도(2009년)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방안으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주목받고 있는 지속가능경영(ESG 경영) 추세와도 부합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정부의 구매력을 활용해 혁신과 지속성장 등 국가정책목표 달성을 견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략적 공공조달(Strategic Public Procurement)을 확대하는 추세다. 이는 과거 국가조달을 단순한 재정 지원 및 중소기업 구매·판로지원 수단으로만 인식하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술혁신, 기후변화 대응 등에 대한 중요 수단이자 기업의 활력 제고 및 코로나19 등 위기극복 모멘텀 확보를 위한 새로운 경제 활성화 정책수단으로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현재 혁신조달로 지칭되는 새로운 국가조달 추세는 정부의 선도적 구매·활용과 조달행정을 통해 국민 요구에 부합하는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조달기업들의 기술혁신을 유도하고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도 2019년 혁신조달 시범사업을 필두로 관련 법 개정을 통해 2020년부터 전략적 혁신조달 정책 수행을 위한 제도 수립과 예산 투입을 진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가조달 주무기관인 조달청은 혁신조달 종합포털인 혁신장터를 개설하고 혁신제품 등록 및 정보조회와 수요조사, 이용절차 등 혁신조달 정책 관련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혁신조달 관련 실적도 2021년 지정제품 1000여개에 구매실적 6229억원으로 매년 상승하는 추세에 있다. 실제로 혁신제품 개발 이후 공공재 성격이 강해 시장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샤픈고트는 지능형 재난 안전 시스템(트리토나 M2)의 혁신조달 참여 이후 판로 확보 및 흑자전환 성공과 함께 CES 2023에 참가해서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혁신제품 및 신기술 기업에 수여하는 혁신상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제도 시행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향후 이러한 혁신조달의 사업 확대 및 효과적인 제도 시행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연구개발(R&D) 결과물에 대한 구매 위주 방식 이외 R&D 과정과 국가조달 구매를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의 개발이 필요하며, 민간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을 향상할 수 있는 방안 마련과 함께 기술 상용화 상황 등에 대한 시장조사도 충분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혁신조달에 대한 국가 수요기관의 지속적 의지와 함께 민간기업들의 혁신적 R&D 노력과 혁신적 공공서비스에 대한 일반 국민의 더욱 높은 관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정포 부산외대 교수(우선구매대상 기술개발제품 일몰제 전문가위원회 위원장) jpkim@b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