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기화 시대는 KERI에 새로운 기회"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KERI) 신임 원장이 '전기화(Electrification)'를 KERI 역할과 미래 비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꺼냈다. 지난 1월 취임과 함께 내세운 새로운 KERI 비전은 '전기화로 미래를 여는 KERI'다.

김 원장은 “산업, 가정, 국가 인프라 등 모든 분야가 전기에너지를 기반으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모든 제품은 '전기(전자)화'하고 있다. 전기화 시대는 이미 와 있고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며 “전기화 시대는 국내 유일 전기전문 정부 출연연 KERI에 새로운 기회이자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임기 동안 '전기화'와 '전기화 시대'를 이슈화하고 전기화 시대에 걸맞는 KERI 역할과 미래 방향을 정립해 나갈 계획이다. 21세기 전기화 시대를 선도하며 세상을 바꾸는 KERI의 미래다.

KERI 비전을 뒷받침할 새로운 리더십도 제시했다. 원장 개인보다 구성원과 팀 전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원 리더십'이다.

김 원장은 “원장을 비롯한 보직은 조직 구성원을 돕는 자리다. 구성원이 성과를 내고 성장하면서 빛을 발할 때 느끼는 리더의 보람은 개인 성취와는 또다른 차원”이라며 “후배, 팀원 등 구성원을 믿고 밀어주며 함께 나가는 KERI만의 조직문화 전통을 세우고 싶다”고 밝혔다.

-15대 한국전기연구원장 취임 한 달여가 지났다.

▲1990년 20대 때 KERI에 들어와 올해 34년차다. 고향 집 같은 KERI 발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힘차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영광이다.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뜨거운 사명감을 갖고 있다. 기업인, 지자체, 유관기관 관계자와 인사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하며 높아진 KERI 인지도와 위상만큼 기대치도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3년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 나보다 임직원이 빛나고, KERI보다 대한민국이 빛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겠다.

-새로운 비전 '전기화로 미래를 여는 KERI'를 제시했다.

▲자동화, 정보화처럼 모든 분야에서 전기가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전기화'는 이미 오래전 시작됐고, 시간이 갈수록 그 범위와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차 전기화는 전기에너지 보급확산 시기다. 20세기 전력망 확장으로 시골마을에 전깃불이 켜지고, 공장기계와 설비는 전기로 움직였다. 2차 전기화는 배터리 시기다. 전기사용 편의성이 극대화돼 노트북,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기기와 전기차 개발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3차 전기화는 현시점으로 범용 전기에너지 즉, 모든 에너지의 전기전환 시기다. 화석연료는 물론이고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까지 모두 전기에너지 생산과 전환으로 귀결된다. 4차 전기화는 모든 인공체가 전기(전자)로 연결되는 시대다.

3차 전기화 시대를 선도하고, 4차 전기화 시대에 대응한 미래 전략을 수립 추진하겠다고 말하는 김남균 원장.
3차 전기화 시대를 선도하고, 4차 전기화 시대에 대응한 미래 전략을 수립 추진하겠다고 말하는 김남균 원장.

-우리나라 전기화 수준은.

▲전기화 선도국이다. 전기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연평균 정전시간이 단 8분으로 세계 최고다. 아다시피 이차전지는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전기화 시대 KERI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가.

▲4차 전기화 시대 선도다. 4차 산업혁명은 전기차와 전기선박, 전기항공 등 수송체계 혁신을 비롯해 궁극적으로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의 초연결 단계다. 4차 산업혁명 완성의 기반에 바로 4차 전기화가 있다. 이 과정에서 KERI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맞이할 것이고, 이에 대응해 KERI 역할과 소명의식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기화로 미래를 여는 KERI'로 비전을 제시했고, 조만간 구체적 실행방안을 '기관운영계획서'에 담아 내놓겠다. KERI 개발기술로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 나아가 전기화 시대에 기여한다는 것이 지향점이다.

-전기화 시대를 선도할 KERI 운영 방향이 궁금하다.

▲첫째 '미래를 선도하는 연구원'이다. 추격자에서 융합·협업·창의를 토대로 전기화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과제를 발굴 제시하고 도전해야 한다. 기술개발을 넘어 신산업을 창출하고, 전기·전력분야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 기관으로서 위상과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는 '기업이 찾아오는 연구원'이다. KERI는 국가 전략기술을 비롯해 다양한 산업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시험인증 양대분야에서 기업협력을 확대해 기업 신기술 도입과 애로기술 해결의 최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겠다. 셋째는 '국민이 함께하는 연구원'이다. 보유 또는 개발기술을 활용해 국가 에너지 안보, 국민 에너지 복지향상에 기여하자는 의미다. 새로운 전기기술을 국가 에너지 정책과 연계하고, 전기기술 기반 치료장비 개발 등으로 국민에게 전기화 세상의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목표다.

-KERI '빅테크(대형 기술)' 도전을 표방했다. 새로운 R&D 방향인가.

▲빅테크는 산업·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큰 최소 100억~1000억원 기술료 수입이 가능한 기술을 말한다. 개발과 상용화까지 최소 5~7년 또는 최장 30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 도전하는 문화의 의식이 중요하다. 임기 내 자율신청을 받아 빅테크 도전팀을 구성, 운영하려 한다. 흔들림 없는 연구환경과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기에 기본사업 운영제도, 성과평가 및 보상체계를 검토해 추가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하겠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장시간 팀원 전원이 총력을 쏟아 부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겠다.

KERI는 그동안 산업체 요소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왔다. 지난해 기준 투자연구비 대비 기술료 수입이 5%를 넘었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재단 연구생산성에 필적할 만한 수치다. KERI 개발기술의 산업현장 활용은 양적 측면에서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 빅테크는 그 이상을 목표로 도전하자는 뜻이다.

김 원장은 원장을 비롯한 선배보다 후배 연구원이 더 빛나는 KERI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김 원장은 원장을 비롯한 선배보다 후배 연구원이 더 빛나는 KERI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원장을 포함한 보직자의 새로운 리더십을 강조했다.

▲자주 인용하는 격언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다. 앞서 '빅테크' 도전 얘기를 했는데, 대형 성과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힘을 모아야 가능하다. 원장으로서 하나의 소망은 KERI가 매일 아침 출근하고 싶은 직장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임직원 공헌과 기여를 우선시하고, 동료 간 공로를 드러내고 칭찬하는 조직문화를 새로운 전통으로 세우려 한다. '당신 덕분에 우리는 최고다' 운동을 펼쳐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장점을 바라보고,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서로 돕는 문화를 조성하겠다. 동료의 존재 자체가 고맙고, 그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고, 동료의 기여도를 서로 드러내고 칭찬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우리나라 전력반도체 발전의 산증인이라 들었다.

▲KERI에서 30년 넘게 전력반도체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현재는 전기차 보급확대로 전력반도체가 크게 주목받고 있지만 1990년대만 해도 비주류 영역이었다. 연구 인프라나 데이터도 미약했고,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 기술장벽도 매우 높았다. 관련 핵심장비 하나를 파악하고자 해외에 갔다가 허탕치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간단한 샘플 하나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전임 원장들께서 끝까지 믿어주셨고, 그 결실이 최근 연이어 맺어지고 있어 기쁘다.

KERI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국산화를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성공했다. 기업 기술이전까지 완료해 조만간 국내 생산한 전기차에 SiC 전력반도체가 적용될 예정이다. 2021년에는 SiC 전력반도체 저가격화와 대량 생산에 기여할 '트렌치 구조 모스펫(MOSFET)' 기술을 개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전기전자재료학회 SiC 연구회장으로 활동하며 SiC 전력반도체 분야 세계 최고권위 '국제탄화규소학술회의(ICSCRM)' 부산 유치에 성공했다. 국내 첫 유치이고 오는 2025년 개최한다. ICSCRM은 20개국 1200여명 전문가가 참석하는 대형 국제교류의 장이다. 우리나라 전력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기전문 출연연 KERI의 역할과 주요 성과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김 원장.
전기전문 출연연 KERI의 역할과 주요 성과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김 원장.

-KERI는 어떤 기관인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 출연연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다. 임직원 수는 800여명이고, 현재 경남 창원에 본원을, 경기도 안산과 의왕 그리고 광주광역시에 지역조직이 있다. 1976년 설립 이래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전력망 및 신재생에너지 △초고압직류송전(HVDC) 및 전력기기 △전기추진 및 산업응용(전동기, 로봇, AI 등) 기술 △나노신소재 및 배터리 △전력반도체 △전기기술 기반 융합형 의료기기 등 국가 기본 인프라에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기 분야 연구개발(R&D)을 중점 수행하고 있다.

전력기기 국제공인 시험인증기관으로 2011년 '세계단락시험협의체(STL)' 정회원 자격을 획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와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KERI 시험성적서는 전세계 시장에서 통용된다. 우리나라 전력기기 기업 해외시장 개척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간 KERI가 거둔 대표 성과는.

▲'차세대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국산화를 꼽겠다. 복잡하고 정교한 국가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흔히 블랙아웃이라 불리는 대정전을 예방하는 중요한 기술로, 세계 다섯 번째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지난해 개발한 미래 모빌리티 배터리와 전장부품에 활용될 '금속·그래핀 복합전극' 기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가운데 최우수 성과로 뽑혔다. '방사선 암 치료용 선형가속기 및 마그네트론 기술'도 지난해 우수성과 100선에 올랐다.

진공 공간에서 발생하는 전자빔의 전기 에너지를 고출력 전자기파 에너지로 변환하고, 고에너지 방사선을 방사해 암을 치료하는 의료기기 분야 핵심기술이다.

차세대전지연구센터는 기술이전과 논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2년 소부장 우수 국가연구실(N-Lab)'에 선정됐다. 센터가 개발한 '차세대 전고체전지 소재 원천 기술'은 전지폭발과 화재위험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다. 기업 기술이전에 성공했고, 지난해 '출연(연) 10대 성과'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 창원은 물론 광주 등에서 지역 협력사업이 크게 늘었다.

▲2020년 시작한 캐나다 워털루대와 '제조AI' 협력사업이 높을 관심을 받고 있다. 기업 제조현장에 AI를 접목해 생산과 효율성을 높이는 사업이다. 지난해에는 부산기업을 지원대상으로 확대했다.

국내 최초로 AI기술을 활용해 '핵심부품 고장상태 진단' '조립 지능화' '효과적인 공구관리 및 제품별 최적 맞춤가공' 등을 지원했고, 수혜 기업의 업무 효율성 제고, 작업환경 개선, 제품 품질 및 생산성 향상 등에서 큰 효과를 봤다.

창원 강소특구 기술핵심기관으로 KERI '지능 전기기술'을 창원 기계산업에 적용하면서 지역 제조업 혁신을 지원하고, 지역 중소·중견기업이 제품개발 단계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예측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전력기기, 해양산업, 건강, 관광, 건축, 헬스케어 분야 151개 기업에 시뮬레이션 기술지원을 통해 270억원 규모의 제품개발 및 생산기간 단축 효과를 이끌어냈다.

[인터뷰]"전기화 시대는 KERI에 새로운 기회"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장

<김남균 원장은>

1984년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KERI에 입사해 전력반도체연구센터장, HVDC연구본부장, 연구부원장과 원장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대외적으로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부회장, 탄화규소(SiC) 연구회 회장, 한국세라믹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훈장 도약장(2018년),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 자랑스러운 전기전자재료인상을 수상했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