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우리나라가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첨단 디지털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비관세 장벽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쇠고기 수입 제한이나 농산물 쿼터 같은 전통적인 무역 장벽에 더해, 플랫폼 규제와 데이터 국외 이전 제한 등을 거론하며 통상 압박의 전선을 넓히는 양상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1일(현지시간) 전 세계 60개 주요 교역국 무역환경을 평가한 '2026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에 대해선 정기적 소통과 전략적 투자 합의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인공지능(AI), 클라우드, 플랫폼 규제 등 디지털 분야 장벽이 대폭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AI 기술에 대한 차별적 조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작년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GPU) 칩과 클라우드 리소스 입찰을 실시하며 참여 자격을 '국내에 주 사업장을 둔 기업'으로 한정해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의 참여를 봉쇄한 점이 명시됐다. 다만, 올해 관련 조항은 삭제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GPU 가격 효율성을 개선하고 신속한 조달과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취지”였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적한 디지털 장벽은 이뿐이 아니다. 우리의 클라우드 보안 인증 제도(CSAP)와 물리적 네트워크 분리 의무가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저해한다고 했다.
한국무역협회(KITA) 분석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에는 금융 데이터 처리에 대한 현지화 요구 규정과 국내 데이터센터 설립을 조건으로 내건 위치기반 데이터 국외 이전 제한 조치 등도 상세히 담겼다. 또 시장 내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규제하려는 온라인 플랫폼법 입법 노력 역시 미국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요소로 거론됐다.
전통적인 무역 장벽에 대한 불만도 여과 없이 제기됐다. 쌀 국가별 쿼터(CSQ) 입찰 시 11월경 경매를 중단하는 관행과, 올해부터 적용되는 식용 대두 수입 최소 쿼터 제한 조치로 인한 미국산 대두 수출 감소 우려가 도마 위에 올랐다. 18년째 유지 중인 '30개월 미만' 쇠고기 연령 제한과 함께, 미국산 소고기를 원재료로 한 가공식품을 함량 기준 없이 전면 수입 금지한 조치 역시 더욱 구체화돼 비판받았다.
이 밖에도 농업 생명공학 규제 승인 지연, 유전자 변형(GE) 표기 의무 확대, 의약품 약가 산정 과정의 투명성 부족 등도 기존처럼 명시됐다.
특히 올해 보고서는 비시장 정책 및 관행, 노동, 환경 등 분야가 주요국 대상 공통 점검 항목으로 새롭게 추가되면서 한국 관련 서술 분량이 기존 7쪽에서 10쪽으로 늘어났다. 수출품에 대한 10% 부가가치세(VAT) 환급,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 등 원양선단 조업 집행 강화 필요성, 우회 수출 대응을 위한 관세회피 세관협력협정 미체결 등이 새롭게 도마 위에 올랐다.
KITA는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우리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요구 수준이 지난해 대비 크게 높아진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미국이 무역법 301조 조사를 진행 중인 문제(과잉생산, 강제노동 등)들과 중첩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향후 통상 압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업통상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는 이번 보고서에 담긴 미측의 문제 제기 사항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한미 FTA 공동위원회 등 공식 채널을 통해 비관세 장벽 관련 현안에 대해 미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