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 대도약, 지금이 골든타임]〈5〉 과몰입·사행성 편견 깨고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워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신중 접근…문화예술 법적 지위 확보
K콘텐츠 수출 비중 60% 차지…AI·그래픽·VR 산업 발전 이끌어
디지털 치료·건축 설계 시뮬레이션·국방 분야 확산
가족 소통·여가·국제문화 교류 '리터러시 교육' 필요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5' 현장
지난해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25' 현장

한국 게임산업은 콘텐츠 수출의 60% 이상을 담당하는 대표 K콘텐츠 산업이다. 게임을 통해 형성된 지식재산(IP)은 영상과 음악, 웹툰, 캐릭터, e스포츠 등으로 확장되며 세계 이용자와 만나는 문화적 접점이 되고 있다. 기술 측면에서도 인공지능(AI), 그래픽, 네트워크, 가상현실 등 첨단산업 발전을 이끄는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산업 규모와 영향력은 커졌지만 국내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문화예술로서 법적 지위를 확보했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둘러싼 급한 불도 넘겼지만, 과몰입과 사행성, 폭력성 등 부정적 이미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K게임 30조원 시대를 열기 위해 제작비 세액공제와 투자 확대 등 직접적인 산업 지원뿐 아니라 게임을 대하는 사회의 제도적·문화적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규제해야 할 오락물에서 영화·음악과 동등한 문화예술이자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산업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 1위 문화콘텐츠... 국내에선 여전히 '과몰입 산업'

한국 게임산업은 세계 시장에서도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어 상위권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온라인·모바일 게임 성장 과정에서 축적한 라이브 서비스 경험과 정보기술(IT) 인프라, 이용자 커뮤니티 운영 역량은 한국 게임사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던 핵심 자산이다.

최근에는 게임의 영향력이 산업 영역을 넘어 문화 전반으로 확대됐다. 게임 캐릭터와 세계관은 영상·웹툰·음악·공연·전시로 재생산되고 e스포츠는 국경과 언어를 넘어 세계 이용자가 함께 즐기는 문화 행사로 성장했다. 게임 속 가상공간은 해외 이용자가 한국 문화와 콘텐츠를 접하는 새로운 디지털 영토 역할도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게임을 설명할 때는 여전히 수출이나 기술, 문화보다 중독과 과몰입 문제가 먼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 게임 이용 여부가 원인처럼 부각되고, 게임을 즐기는 행위 자체가 학업이나 사회생활을 방해하는 것으로 일반화되기도 한다. 사행성 게임과 일반 게임의 경계가 충분히 구분되지 않은 채 산업 전체가 규제의 대상으로 묶이는 일도 반복돼 왔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한국 게임산업은 문화콘텐츠의 주력 산업임에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과몰입과 규제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산업의 성장 속도를 사회적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지금 K게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진단했다.

부정적 인식은 산업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임을 국가 미래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제작비 세액공제, 게임 전문 투자계정, 경품 규제 개선,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 등 구체적인 정책은 수년째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산업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선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K게임 대도약, 지금이 골든타임]〈5〉 과몰입·사행성 편견 깨고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워야

◇문화예술 법적 지위 확보했지만... 생활 속 인식 개선 필요

게임은 2022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문화예술의 범주에 공식적으로 포함됐다. 오랜 기간 업계와 학계가 요구해온 게임의 문화예술적 지위가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에서도 정부는 충분한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접근하는 방향을 택했다.

하지만 법과 정책의 일부 변화만으로 사회적 인식까지 곧바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게임이 문화예술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고, 학교 교육과 공공 캠페인에서도 게임은 창작물이나 문화적 경험보다는 과몰입 예방의 대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게임업계 고위 관계자는 “예전보다 정부와 국회에서 게임을 중요하게 본다는 공감대는 분명 커졌지만 정작 정책으로 실행되는 속도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게임산업을 미래 먹거리라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제도와 예산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게임사들은 사회공헌과 문화 확산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보조기기 지원, 청소년 대상 진로·코딩 교육, 게임을 활용한 가족 소통 프로그램, 문화유산과 연계한 콘텐츠 제작 등이 대표적이다. 짧은 영상과 온라인 플랫폼 등 국민이 실제 이용하는 매체를 활용해 게임의 문화적·산업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게임사 관계자는 “게임업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인식 개선을 넘어 게임이 창출하는 긍정적 가치를 일상적으로 확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임은 인문·예술·기술 결합한 종합예술”

게임은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다양한 창작 분야와 첨단기술이 결합된 종합문화콘텐츠다.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와 세계관, 음악, 미술, 영상, 연출, 프로그래밍, 서버 기술, AI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인력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용자의 참여를 통해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점도 다른 콘텐츠와 구별되는 특성이다온라인 게임에서는 이용자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새로운 놀이문화와 서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게임 기술은 교육과 의료, 국방, 제조,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게임엔진은 영상과 건축, 자동차 설계에 활용되고 있으며 가상현실과 디지털 치료, 재활훈련에도 게임의 상호작용 구조가 적용된다. 게임산업에 대한 투자가 디지털 산업 전반의 역량을 높이는 기반이 되는 이유다.

이 학회장은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문과 예술, 기술이 융합된 종합예술이자 교육·의료·문화를 아우르는 사회적 자산”이라며 “게임을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 없이는 산업 진흥 정책도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식 변화의 출발점으로 교육을 꼽았다. 학교에서 게임을 무조건 제한하거나 예방해야 할 대상으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구조와 표현 방식, 이용자 권리와 책임을 함께 이해하도록 하는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부모와 자녀가 게임을 함께 경험하는 문화도 중요하다. 가족이 게임 이용시간과 결제, 콘텐츠 선택 기준을 함께 논의하고 게임의 재미와 부작용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경험이 쌓여야 부정적 인식도 완화될 수 있다.

◇'국가전략산업' 정책으로 증명해야

게임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 게임산업이 적절한 제도적 지원을 받는다면 세계 3대 게임강국으로 도약할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대형 게임사는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대작과 IP 확장에 나서고, 중소·인디게임사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장르 다양성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해외 주요 국가가 게임 제작비 세액공제와 지역별 인센티브, 전문 투자기구 등을 통해 자국 게임산업을 지원하는 동안 국내 기업은 상당 부분 자체 역량에 의존해 경쟁해 왔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책 결정이 늦어질수록 산업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을 국가전략산업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제작비 세액공제와 게임 전문 투자계정 등 산업계가 공감하는 정책들이 실제 제도로 이어질 때 비로소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위상도 완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에 남아 있는 과거 규제의 흔적을 정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사행성 문제를 계기로 만들어진 규제가 부작용 가능성을 이유로 산업 전체를 제한하고 있다. 악용 행위를 정밀하게 규제하고 정상적인 창작·서비스 활동은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질병코드 논란 넘어 '게임 존중하는 사회'로

유병한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은 K게임 골든타임을 대도약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문화적 체질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오랜 시간 산업의 발목을 잡아온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을 과학적·객관적 검증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첫 단추”라며 “이를 바탕으로 게임이 일시적인 오락거리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디지털 영토를 넓히는 명실상부한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이 축적한 건전 게임문화 조성 경험을 글로벌 파트너와 공유하고 국제 교류를 확대하는 것도 지속 가능한 해외 진출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게임문화의 긍정적 가치를 확산하는 범사회적 협력도 요구된다. 정부와 게임업계, 학계, 교육계, 언론이 각각 추진하던 사업을 연결하고 객관적인 자료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게임의 사회적 역할을 알릴 필요가 있다. 장애인과 고령층의 여가, 가족 간 소통, 교육과 치료, 국제문화 교류 등 게임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 이사장은 “게임 리터러시의 저변을 넓히고 글로벌 문화 연대를 강화해 K게임이 사회적 존중 속에서 세계 최고의 문화 영토를 개척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K게임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했다. 게임을 문화와 기술, 수출을 이끄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인정할 때 K게임 30조원 시대도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