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칼럼] 기밀정보 탈취돼도 못 쓰게…동형암호로 데이터 보호

변종문 한국인식산업 부대표
변종문 한국인식산업 부대표

최근 국립외교원의 온라인 교육 시스템에서 발생한 장기간 해킹 사고는 우리나라 국가 정보보호 체계에 적지 않은 경종을 울렸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외교관과 재외공관 관계자 등 다수의 정보가 장기간 외부 공격에 노출됐고, 관계기관의 통보 이후에야 침해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관에서 이러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은 국민에게 큰 우려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외교부는 이번 사고가 소프트웨어(SW) 제조사도 인지하지 못했던 '제로데이 취약점'을 악용한 공격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로데이 공격은 기존 보안장비만으로 탐지하거나 차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공격 자체의 난이도와 별개로, 장기간 침입을 탐지하지 못한 점과 정보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은 분명한 과제로 남는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유출된 정보의 2차 악용 가능성이다. 외교관과 공공기관 종사자의 이메일, 소속기관, 직책 등의 정보는 표적형 피싱(스피어피싱)이나 사회공학적 공격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공격은 시스템 자체보다 사람을 겨냥하기 때문에 한 번 정보가 유출되면 장기간 위험이 지속될 수 있으며, 국가 안보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교훈은 '완벽한 방어는 어렵다'는 현실을 전제로 보안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정보보호는 외부 침입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해킹을 100% 차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침입이 발생하더라도 중요한 정보는 보호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기술 가운데 하나가 '동형암호'다. 동형암호는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에서 복호화하지 않고도 필요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암호기술이다. 기존 방식에서는 데이터 처리를 위해 일정 시점에 평문이 노출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동형암호는 암호화 상태를 유지한 채 처리할 수 있어 민감정보의 노출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 공격자가 시스템에 침입해 데이터를 탈취하더라도 복호화 권한이 없다면 해당 정보를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침입 차단에만 의존하는 기존 보안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접근이다. 결국 핵심은 해킹 여부와 관계없이 중요 데이터가 평문으로 노출되는 순간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물론 동형암호가 모든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기술은 아니다. 현재는 처리 속도와 구축 비용 등의 과제가 있으며, 모든 시스템에 일괄 적용하기에는 기술적·경제적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안보, 국방, 외교, 금융, 의료 등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는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외에서도 관련 연구와 적용 사례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외교관과 국가 핵심 인력의 개인정보, 생체정보, 인증정보와 같이 유출 시 회복이 어려운 데이터는 기존 암호화 방식뿐 아니라 동형암호와 같은 차세대 보호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 보안 환경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투자이자 위험 관리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외교망 해킹 사건은 특정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전체가 정보보호 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 안보를 위한 기술 투자 방향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다. 보안은 사고가 발생한 뒤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방어 중심 보안 체계를 넘어, 데이터 자체를 보호하는 새로운 보안 패러다임을 적극 검토하기를 기대한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변종문 한국인식산업 부대표 bjmon99@korea-i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