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2011년 6월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발표한 한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이다. 지금은 어떨까.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는 “여전히 20% 안팎”이라고 입을 모은다. 15년이 지났지만 제자리걸음이란 뜻이다. 메모리 제조 강국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핵심 공급망인 장비 국산화는 더디다.
반도체 제조 신흥 강자로 떠오른 중국과 견주면 상황은 더욱 안타깝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욜그룹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21년 8%에서 지난해 23.2%로 급증했다. 2030년에는 40%에 육박할 것이란 게 욜그룹 전망이다.
중국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을 급격히 끌어올린 계기는 미국 제재였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경계한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對) 중국 수출을 가로막았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KLA 등 미국 장비사뿐만 아니라 동맹국 장비사인 ASML(네덜란드)·도쿄일렉트론(일본)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들 기업은 반도체 장비 시장을 주도하는 일명 '톱 5'다.
첨단 장비를 도입할 수 없었던 중국은 국산화를 택했다. '너희가 주지 않으면 우리가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뒷받침됐다. CXMT·YMTC·SMIC 등 중국 메모리 및 파운드리 기업이 중국산 장비를 우선 도입했다.
자국산 장비를 많이 쓰다 보니 기술력도 올라갔다. 연구실이 아닌 실제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가동하면서 장비 문제점을 즉각 파악하고 개선하며 고도화할 수 있었다.
국내 후공정 장비 업체 임원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기술이 한참 뒤처졌다고 생각됐지만, 이제는 한국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평가된다”며 “그러면서 가격은 한국 장비보다 20~30% 저렴하다”고 말했다.
미국 제재로 본격화된 중국 장비 국산화 행보는 2019년 한국과 닮았다. 당시 일본이 극자외선(EUV) 감광액(PR) 등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막았다. 당시 정부 연구개발(R&D) 지원 아래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소재기업이 힘을 합쳐 규제 품목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나마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가운데 소재 국산화율(30~50%)이 높은 이유다.
미국의 중국 수출 규제, 또 일본의 한국 수출 통제처럼 공급망 위기에만 반도체 소부장 국산화가 가능할까. 실제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급증으로 세계 각국의 반도체 제조사들이 공장(팹) 투자에 나섰다. 팹 구축 비용의 80~90%를 차지하는 장비 수요 역시 급증했다. 최근 장비 납기(리드타임)가 평시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이유다.
지금 장비를 확보하지 못하면 반도체 생산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AI발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많은 반도체 제조사가 장비 확보에 혈안이니 그야말로 '공급망 위기'다.
이런 공급망 위기 속에서 반도체 장비의 외산 의존은 국가 첨단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장비 국산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반도체 장비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수요 기업이 움직여야 하고, 정부가 밀어줘야 한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