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도심 지반은 가라앉나

#.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서울사옥 앞 사거리에 깊이 1.5m, 지름 30㎝가량 싱크홀(함몰구멍)이 발생했다. 편도 3차로의 1·2차로 사이에 생긴 싱크홀은 인근을 지나던 시민 신고로 발견됐다. 다행히 발생 당시 주변을 지나던 차량이 없어 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도시의 땅이 가라앉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시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부근, 지난 2월 용산, 3월 신촌 현대백화점 앞 등 곳곳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한다. 도시화에 따른 지하 공간 개발이 증가하고 지하수위가 낮아지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4년 사이 전국 105곳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다.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20년 이상된 노후상수도관이 전체의 3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받은 ‘하수도 부분 지반침하(싱크홀) 및 노후 상수도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 3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105곳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3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19건, 강원 15건, 전북 7건, 부산 5건, 대구 4건 순이었다.

◇다양한 싱크홀 발생 원인

싱크홀이라는 현상은 같아도 발생원인은 다양하다. 자연적 요인으로는 지하 암석이 서서히 용해되면서 빈 공간이 생기고 이 공간으로 상부 지반이 붕괴되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 도심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대부분 인공적 이유로 발생한다. 2012년 이후 발생한 싱크홀 105건 중 ‘하수누수로 인한 지반유실’이 절반에 가까운 51건이나 됐다.

인공적 싱크홀 발생 원인은 지하에 묻힌 상하수관이 노후해 손상되고 여기서 흘러나온 물이 지반을 함몰시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형 건물 등 건축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지하공간을 개발하고 지하수 흐름이 바뀌면서 지반이 내려앉는 일도 있다. 잘못된 지반 굴착공사로 지반이 함몰하기도 한다. 지난 2월 용산에서 갑자기 보도가 가라앉으며 두 명이 3m 아래로 추락한 일이 공사로 인한 싱크홀 발생 사례다. 당시 아파트 공사장 흙막이 벽체에서 누수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이 원인이었다.

◇관리 안 되는 싱크홀

아직 국내에서는 싱크홀에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 싱크홀 발생 때마다 경찰, 시청, 구청 등 사고 조사 주체가 달라진다. 사고 후 대책 역시 제각각이다. 이러다 보니 지난 3월 신촌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불과 10m 인근에서 5일 후 다른 싱크홀이 발생했는데도 대비하지 못했다.

대책도 뚜렷하지 않다. 이자스민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수도관 중 20년 이상 돼 교체가 시급한 비율이 30%가 넘는다. 하지만 상수도관 교체율은 1%대에 불과하다. 노후 상수도관은 서울이 48%로 가장 많고 대구 45%, 인천 40%, 대전 39% 순이다.

해외는 싱크홀 등 도로함몰 사고 대비책을 세워가고 있다. 일본 도쿄시는 지하시설물 종류와 매설연도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또 주요 시설 안전도를 진단해 사고 위험도를 평가하고 사고 대책을 수립한다. 지하시설물 교체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싱크홀 선제 대비가 핵심

정충기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최근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개최한 포럼에서 “복지의 시작은 방재이고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보다 철저한 재해 대비가 필요하다”며 “싱크홀에 선제적 맞춤형 대응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와 급격한 도시화로 재해 발생 가능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미래 상황 변화를 고려한 재해 예측과 대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싱크홀이 발생하는 빈도와 피해 규모 등 재해 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늦었지만 싱크홀 대비책 수립에 나섰다. 우선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뭉쳐서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싱크홀 찾기에 나섰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참여하는 융합연구단을 선정하고 싱크홀 대응 연구개발(R&D)을 추진한다. 지하공간 지질환경, 지하수 분포 및 변화, 도시철도 구조물 및 주변지반 변화, 주변 상하수도 관로 상태 변화 등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사전 감지·예측·대응하는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다.

2017년까지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대전광역시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또 2020년께에는 수도권과 광역시 전체로 적용 지역을 확대해 싱크홀 대응에 나선다.

싱크홀 발생을 예방하는 법도 마련된다. 변재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건설사 등이 공사를 하기에 앞서 지반조사를 철저히 하고 부실 측정 시 형사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건설기술진흥법(일명 싱크홀 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반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때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으며 싱크홀 발생 시 인명 피해 위험이 큰 도심 등에서는 인구밀집 상태 등을 고려하는 등 지반조사 기준을 강화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