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보통신 대통령`은 갔지만...

1927년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민주화의 거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시작해 투옥과 가택연금, 의원직 제명, 최장 단식 투쟁 등 우리 역사의 험난한 역경을 헤치고 1992년 14대 대선에서 42%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역사적 주인공이었다. 5·16정변으로 군사 정부가 들어선지 33년 만에 대한민국에 새로운 역사를 연 인물이었다.

취임 직후 군사조직인 하나회 해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 도입,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 등 과거 정부가 손도 못 댔던 개혁을 이끌기도 했다. 물론 정권 후반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 외환위기로 인한 ‘IMF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는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가져왔다.

엇갈린 평가 속에서도 폄훼할 수 없는 업적이 있다. 바로 ‘정보통신부 신설’이다. 김 대통령은 취임 2년째인 1994년 12월 연말 정부 조직 개편에서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편했다. 국가정보화를 선도할 전담 부처의 첫 탄생이다. 정보화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당시는 파격이었다. 관련 부처 반대에도 과학기술처, 상공부로 분산돼 있던 정보화 업무를 단일 부처로 통합했다.

당시 정통부의 역할은 국가 사회 정보화정책의 수립 및 종합 조정,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과 정보보호, 통신사업자의 허가 육성, 전파 방송에 관한 정책 수립과 관리, 우편과 우체국 금융 사업에 관한 정책 수립 추진 등이었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 흐름과 맞아 떨어졌다.

국가 정보화를 선도할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1980년대도 있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 비로소 오랜 숙원이 성사됐다. 정통부는 세계 일류 IT강국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짧은 기간에 정통부를 구심점으로 수많은 정책성과를 올렸다. 정보통신 기술 수준을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고 정보화 강국의 기초를 닦은 기간이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재임기간 동안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 무궁화 1호 위성 발사, 세계최초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등 굵직한 업적을 이뤘다. 정통부 설립을 시작으로 정부와 산업계가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기술력을 갖추며 정보화 시대를 선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유무선망을 보유하면서 ICT 강대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한발 앞서 시대를 읽고 발 빠르게 움직인 까닭이다. 그가 겪어낸 굴곡진 삶에서도 이 부분은 결코 작게 평가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최근 IT를 포함해 산업계 안팎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장기불황 시작이라는 우려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기업에서도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앞세워 경제 불씨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기울이지만 시장은 영 반응이 없다. 자부심을 가졌던 IT경쟁력도 뒷걸음질 치며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력상품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 발목이 잡혀 있다.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다고 외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상황이다. 지금도 경제와 시장 모두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혁신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논리도 일리는 있다. 과거처럼 정부가 모든 것을 앞장서서 나서기 보다는 이제는 민간이 나서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판단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역할은 부인할 수 없다. 산업과 시장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최소한의 비전과 방향을 담은 굵직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 정통부와 같은 컨트롤타워까지는 아니더라도 산업계와 호흡을 같이 할 구심 역할은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화에 한참 뒤처지면서 갈팡질팡할 때 정통부가 이런 역할을 자임했다. 역사의 공과는 있지만 여전히 정통부를 설립한 점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혜안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의원직 제명을 당하며 남긴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정보통신 대통령’은 이제 역사에 살게 됐다.

정보통신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또 다른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면과 함께 정통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정통부가 가졌던 철학과 방향은 여전히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