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22>그레이트 디커플링

어느 날 연구소 동료 에릭이 상기된 얼굴로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내놓은 종이에는 유명한 거시경제지표 네 가지가 그래프로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내가 뭐가 문제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에릭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종이를 겹쳐 보라고 했다. 나는 네 장을 겹쳐서 창 쪽을 향해 들어보았다. 서로 같이 움직이던 네 개 선이 어느 순간 제 각각인 듯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큰일이 벌어진 거야. 거대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시작된 거라고.”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탈레스 테세이라 교수와 피터 제이미슨 교수는 이것이 거시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디커플링은 기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원인은 명확하다. 디지털과 디커플링을 무장한 혁신 기업은 그동안 당연히 묶음으로 여겨져 온 가치사슬을 산산조각으로 내놓았다.

쇼루밍을 보라. 소비자는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정작 구입은 최저가 인터넷 스토어를 찾는다. 오프라인 매장에는 치명타였다. 쇼핑과 구매는 이제 한 묶음이 아니다.

TV도 마찬가지다. 티보(TiVo)가 내놓은 디지털 셋톱박스 '볼트'는 버튼 하나로 광고를 건너 뛸 수 있다.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위해 앨범 전체를 구입할 필요도 없다. 애플 아이튠스는 이것을 풀어헤쳐서 소비자가 원하는 낱개로 공급했다. 이런 언번들로 산업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사례는 비디오게임부터 쇼핑까지 수없이 많다. 바로 '거대한 디커플링'이 시작됐다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교수는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새로운 묶음을 찾아내 다시 묶어 가라고 말한다.

쇼루밍에는 인터넷 매장이 줄 수 없는 서비스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제품과 서비스를 묶은 가치가 단품 가치와 싼 가격을 넘어서도록 다시 묶었다. 방송사는 시청자에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간접 광고로 대응했다.

베스트바이는 고객 대신 제조사에 눈을 돌렸다. 고객에게는 인터넷이든 어디든 찾아낸 최저가격에 맞춰 판매했다. 그 대신 제조사에 쇼룸 명목으로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통신사에 스카이프나 왓츠앱 같은 인터넷 전화가 만든 디커플링은 골칫거리였다. 텔레포니카는 가입비는 높이는 대신 통화료나 메시지는 거의 무료로 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이들 사례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새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만드는 디커플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두 교수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와 고객이 만드는 가치를 새로 조합하고 묶어서 리커플링을 하라고 말한다. 둘째는 디커플링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아무리 초보자라 하더라도, 당신 상대가 어떤 골리앗이더라도 당신을 기존 기업 위협 존재로 만든다.

디커플링은 상식이 말하는 것이 근본부터 틀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당대의 학자나 경영 구루가 말하는 것도 예외 없다.

그런 만큼 독특한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이제 누군가 만든 게임의 룰 대신 내가 찾은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다. 디커플링과 리커플링. 하나는 치명성이 강하고 다른 하나엔 오묘함의 미학이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