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글로벌 가전시장, 스마트홈 플랫폼 주도권 확보 전쟁

글로벌 가전시장이 스마트홈 플랫폼 주도권 확보전으로 치닫는다. 하드웨어(HW)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고 제조사 구분 없는 기기 연결 요구가 커지면서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이 시장을 얻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스마트홈 플랫폼 역할도 바뀐다. 단순히 가전을 연결·작동하는 솔루션에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확장된다. 가전 제조사는 물리적(제품)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사 제품 중심 플랫폼 확산 전략을 취하면서 타 제조사와 협력 모델을 모색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허브로 스마트홈 생태계 전략을 강화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역할이 커지면서 경쟁이 격화된다.

[이슈분석]글로벌 가전시장, 스마트홈 플랫폼 주도권 확보 전쟁

◇삼성 '스마트싱스'로 따로 또 같이

스마트홈 플랫폼 주도권 싸움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성전자다. 자사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자체 생태계 조성을 시도하면서, 사물인터넷(IoT) 국제표준 OCF를 활용해 타사 기기 연동을 병행한다.

현재 스마트싱스를 허브로 연결, 제어할 수 있는 기기는 200여개 기업 2500여개 제품이다. 글로벌 가전 시장 영향력을 바탕으로 제품 간 연동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최근에는 200여개 기업과 TV를 매개로 보안 카메라, 스마트 조명, 셋톱박스 등을 블루투스, 와이파이 신호로 연동·제어 가능한 환경까지 만들고 있다. 여기에도 허브는 스마트싱스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 하나로 집 안 모든 기기를 통합 제어하는 '삼성 주도' 가전 생태계 조성에 승부를 걸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 제품만 연동이 가능했던 폐쇄성을 버리고 타 기기도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연동 가능케 구현하면서 자사 중심 생태계 조성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국제표준을 적절히 적용하면서 외연을 넓히는 전략도 펼친다. 삼성전자가 참여하는 국제표준그룹 OCF가 대표적이다. OCF는 2018년 세계 최초로 IoT 관련 국제표준을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국제표준이 비준되기 전인 2017년부터 이 기술을 선제적으로 모든 가전에 적용했다. 지난해에는 에어컨, 로봇 청소기를 대상으로 OCF 클라우드 인증까지 획득했다. 이 클라우드 인증은 타사 스마트홈 플랫폼에도 연동 가능하다는 의미다.

국제표준을 적용한 개방형 생태계를 표방하지만, 이 국제표준을 따르지 않는 다른 기기들도 스마트싱스 안에서 제어되도록 끌어안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IoT 허브 '스마트싱스 허브'와 AI 스피커 '빅스비' 등 스마트홈 구현 HW까지 강화하면서 주도권 확보에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스마트싱스는 국내에서만 월 사용자가 500만명을 넘어서면서 스마트홈 시장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단순히 연동, 제어 역할을 넘어서 공기질 모니터링, 반려동물 관리, 에너지 모니터링 등 6개 서비스까지 플랫폼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LG전자, '씽큐'로 헤쳐모여

LG전자는 삼성전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개방형 생태계 조성에 소극적이다. 아마존 '알렉사', 구글 '구글홈' '네스트', KT '기가지니' 등 AI 스피커와 연동해 연결성을 확장하지만, 타 제조사 연동까지 활발한 상황은 아니다.

대신 가전 시장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사 중심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지난해 LG전자 생활가전 부문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홈 플랫폼 사용자 수도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분간은 높아진 영향력에 맞춰 스마트홈 플랫폼 'LG 씽큐' 기능을 고도화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IoT 국제표준인 OCF 적용 현황도 이를 방증한다. LG전자가 OCF 인증을 받은 제품은 'LG웹OS 4.5TV'와 '인스타뷰 씽크' 두 개뿐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기준으로 보면 올레드 TV 1종 밖에 없다.

현재 LG 씽큐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어 가능한 가전은 LG전자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20여군이다. 여기에 AI 기능을 강화해 연계 서비스와 콘텐츠, 모바일 커머스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웠다. 공기질이 나쁘면 자동으로 공기청정기를 작동시키고, 공기청정기 필터 교체나 세탁기 통세척 시기를 AI가 알려주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또 LG 씽큐 앱에서 고객 맞춤형 정보를 주거나 사용 패턴 정보, 서비스 이력, 공익 콘텐츠 등을 제공하는 '케어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LG전자는 연결성 면에서 소극적인 대신 플랫폼 고도화에는 개방적 자세를 취한다. LG 씽큐 플랫폼 고도화에 다양한 AI 기술을 접목하고, 서비스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LG 스마트홈 전략의 큰 줄기인 'PCC(Proactive Customer Care)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가전시장이 제품을 넘어 서비스 경쟁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맞춰 사용 패턴 분석이나 사전 고장 징후 포착, 자가진단 등 서비스 영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폐쇄적 연결성도 변화 조짐이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스마트홈 시범사업에 참여해 'LG 씽큐' 플랫폼 연동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이다. LH 스마트홈 플랫폼과 LG 씽큐가 연동되면 각 사가 보유한 기기는 자동으로 연동된다. 개별 기기 단위 연동 없이 단숨에 다양한 기기와 연결성을 확보하게 돼 효율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삼성과 LG는 홈 IoT 영역에서도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전략을 취한다”면서 “점유율 확보가 우선인 LG전자 입장에서는 자사 중심 생태계 전략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IT 공룡, 조력자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스마트홈 플랫폼 시장에서 가전업체가 가진 경쟁력은 분명하다. 제품을 직접 제조·공급하면서 물리적 연동과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는 최일선에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제품 스펙 경쟁이 아닌 연결성과 편의성에 기반한 서비스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제조사 입지도 흔들린다.

글로벌 스마트홈 플랫폼 시장에서 강력한 플레이어로 부상한 곳은 구글, 아마존, 애플과 같은 IT 공룡이다. 이들은 클라우드, AI, IoT 등 혁신적 IT 기술을 바탕으로 고도화된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까지는 가전업체와 협업 관계를 유지하지만, 장기적으로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IT 공룡은 음성 AI 서비스를 기반으로 이기종 기기를 연동하고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술력까지 투입해 가전업계가 창출하지 못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세계 음성 AI 스피커 시장과 클라우드 시장 모두 1위를 차지하는 아마존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스마트홈 플랫폼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AWS의 'AWS IoT' 솔루션은 다양한 기기를 연결하고 데이터를 수집·분석한다. 가전업체의 스마트홈 플랫폼 개발에 기반이 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셈이다. 실제 LG전자 'LG 씽큐'는 AWS IoT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아마존 음성 AI 서비스 '알렉사'는 삼성전자, LG전자, GE, 일렉트로룩스 등 주요 가전사 제품 과 상당 부분 연동된다. 알렉사 기반 가전 관리, 모니터링 등 관련 서비스는 약 6만개에 달한다.

구글 역시 '구글 어시스턴드'라는 음성 AI 서비스를 기반으로 집안 다양한 가전을 연동, 제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최근 출시된 AI 스피커 구글 네스트 허브와 네스트 미니는 크롬 캐스트, 안드로이드 기반 TV는 모두 연동된다. LG전자, 코웨이, 경동나비엔, 한샘 등 다양한 국내 기업 제품도 지원한다.

AI 스피커는 가전기기와 스마트홈 플랫폼 사이에서 사용자 명령을 전달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현재까지는 가전업계 주도 스마트홈 플랫폼 시장에서 조력자 역할에 머물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쟁자로 부상할 수도 있다.

이들은 기기 연동과 명령어 전달 과정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한다. 무엇보다 음성 AI 서비스를 개방해 다양한 영역에서 이를 이용한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생태계를 만들었다. 가전 업계가 약점인 스마트홈 서비스 영역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자산을 갖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홈 업계 관계자는 “향후 스마트홈 플랫폼 시장은 구글이나 아마존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스마트홈 플랫폼은 단순히 기기를 연동, 제어하는 역할이 아니라 생활에 편의를 주는 다양한 서비스가 붙어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데, 가전업계는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IT 생태계를 가진 기업과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