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일본 '디지털청'의 교훈

일본 정부는 작년 9월 '디지털청'을 신설했다. 중앙정부와 지방 정보시스템을 연계해 행정 시스템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자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전초기지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디지털청이 일본 사회 전체의 디지털전환(DX)을 주도하는 사령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청 출범 6개월이 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일본에서는 디지털청은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성공적 DX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데다 경제산업성과 분야가 겹치면서 이른바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의와 넘치는 페이퍼워크는 관료·민간 출신 직원 간 갈등으로 번졌다.

[ET톡]일본 '디지털청'의 교훈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회의가 너무 많다.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다” “같은 서류를 여러 번 만들고 있다”는 민간 출신 디지털청 직원의 불만을 보도했다. 작년 말에는 디지털청 직원 10여명이 일제히 퇴사해 민간 대기업으로 전직하는 사례가 나왔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최근 '발버둥치는 디지털청'(もがくデジタル廳)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게재하며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어 “유엔 세계 전자정부 순위에서 2018년 10위이던 일본이 2020년 14위로 떨어졌다”면서 “(디지털청이) 일본을 디지털 선진국으로 거듭나게 하는 사령탑이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대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한 각국은 DX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정부 부처와 민간기업에 확산하기 위한 조직을 잇달아 신설하고 있다. 일본의 디지털청 신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직제에 과학·미래기술 수석이 사라졌다. 각국에서 국가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가치로 급부상한 DX와 ICT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지 대단히 우려스럽다. 국가끼리 첨단 기술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지금 타국에 주도권을 내준다면 향후 수십년을 디지털 약소국으로 보낼 수 있다. 물론 일본 디지털청 사례처럼 특정 부처 또는 수석실 한 곳에서 국가 전체 DX나 ICT 산업을 관장하는 것이 옳은 방법은 아니다. 일본은 '아날로그 왕국'이라는 변함없는 토양에 '디지털청'이라는 이질적 씨앗을 심으면서 '사상누각'을 자초했다.

한국은 지난해 유엔의 세계 전자정부 순위에서 2위를 기록했다. 일본과 달리 국가 전체의 디지털화 발판은 이미 마련됐다. 여기에 산·학·연·관을 아우르는 구심점이 있다면 DX에 한층 속도를 붙일 수 있다. 차기 정부는 한국을 '디지털 최강국'으로 이끌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