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 이광형) 연구진이 DNA 염기서열 설계로 촉매 주변 화학 환경을 나노미터(㎚) 수준에서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DNA를 설계해 수소 생산 효율과 원하는 화학물질 생성량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촉매 플랫폼을 제시했다.
KAIST는 박지민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이 금 나노입자 촉매 표면에 '단일가닥 DNA(한 줄로 이뤄진 유연한 DNA 분자)'를 입혀 촉매 주변 미세 화학 환경을 정밀 제어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수소 생산이나 친환경 화학제품 제조에 활용되는 전기화학 반응에서는 촉매 뿐 아니라 주변 산도와 이온 분포 같은 국소 반응 환경이 성능을 좌우한다. 기존에는 특수 고분자 코팅재로 이를 조절해 왔는데, ㎚ 수준에서 내부 구조를 정밀 설계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단일가닥 DNA'에 주목했다. DNA는 음전하를 띠고 있어 주변 이온 이동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길이·염기서열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특히 염기서열을 바꾸면 DNA 내 네트워크 구조를 정밀 조절할 수 있어 촉매 표면에 맞춤형 나노 코팅층을 구현할 수 있다.
연구팀은 금 나노입자 표면에 다양한 염기서열의 DNA를 결합한 뒤 전기화학 반응을 분석했다. 그 결과 촉매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단순한 코팅층 두께가 아니라 DNA 염기서열에 따라 형성되는 내부 네트워크 구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같은 두께 코팅층이라도 DNA 내부 구조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반응에 필요한 이온들의 이동 경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실시간 표면증강라만분광법(레이저를 이용해 분자 화학 상태를 실시간 분석하는 기술)으로 반응 과정을 관찰한 결과, DNA 층이 수산화 이온 이동을 조절해 촉매 주변 국소 산도를 변화시키는 기능성 계면층으로 작동함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수소 발생 반응과 글리세롤 산화 반응(바이오디젤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글리세롤을 고부가가치 화학물질로 전환하는 반응)에 적용했다. 그 결과 DNA 염기서열에 따라 수소 생산 효율이 크게 달라졌으며, 화장품·의약품 원료로 활용되는 글리세르산 생성 선택도 또한 향상됐다.
박지민 교수는 “이번 연구는 DNA가 유전정보 저장체가 아닌 전기화학 반응을 제어하는 정밀 나노소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DNA 서열 설계를 통해 촉매 표면의 산도와 이온 이동을 조절함으로써 향후 수소 생산과 바이오매스 전환 등 탄소중립 기술 전반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의 오상연·이태경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했으며, 박지민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지'에 5일 자 게재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