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기업혁신과 슈퍼이윤의 선순환, 초혁신경제로 가는 길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슈퍼이윤과 횡재세 논쟁

기업의 '슈퍼이윤(Super-profit)'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자본주의 역사만큼 오래된 논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투자은행들이 천문학적 보너스를 지급하자 유럽 일부 국가는 '은행세'를 도입했고,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자 영국은 정유사에 '횡재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통해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수혜 기업의 초과이윤 일부를 정부와 공유하도록 했다. 이처럼 슈퍼이윤의 사회적 환원 요구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반복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논쟁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의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그러나 이 논쟁에 앞서 밝혀야 할 전제가 있다. 슈퍼이윤은 어디서 왔는가. 이에 대한 답 없이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횡재세 논리가 반도체에 맞지 않는 이유

글로벌 경쟁에서 혁신으로 일군 슈퍼이윤과, 내수 시장에서 규제 환경에 힘입어 발생한 초과수익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정유, 금융, 통신 산업은 국내 시장에서 규제와 인허가로 보호받는다. 정부가 설계한 시장에서 소수 업체에게 발생한 초과이익이므로 은행세나 횡재세의 논리가 성립한다.

반도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산업의 전장은 정부가 재단하는 국내 시장이 아니다. 삼성, SK하이닉스, TSMC, 인텔, 마이크론은 글로벌 시장에서 정면으로 치킨싸움을 벌이며, 수십 년의 투자와 기술 축적, 혁신 경쟁을 통해 쟁취한 국제 경쟁력만이 사활을 가른다. 미·일·중·유럽이 자국 반도체 기업에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우리만 기업의 이윤을 환수한다면 국제 경쟁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기업혁신과 슈퍼이윤의 선순환
기업혁신과 슈퍼이윤의 선순환

◇이윤의 본질은 기업 혁신의 대가

슘페터는 이윤의 본질을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혁신의 보상'으로 규정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개척한 기업이 일시적으로 누리는 독점적 프리미엄, 그것이 슈퍼이윤의 정체다. 경쟁자들이 그 기술을 따라잡는 순간 슈퍼이윤은 사라진다. 기업은 혁신을 멈추지 않고 수익을 혁신에 재투자해야 살아남는다.

반도체 산업이 대표적이다. 수십조원의 선행투자와 수십년의 기술 축적이 없으면 단 한 장의 칩도 양산할 수 없다. 웨이퍼 하나가 오염되면 수백억원이 날아가고, 수율 1%포인트(P)를 높이기 위해 수천명의 엔지니어가 밤을 새운다. 극한의 리스크를 감수한 끝에 얻어낸 수익에 '횡재'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다.

물론 기업은 진공 속에서 혼자 크지 않는다. 국가의 세제 혜택, 산업 인프라, 전문 인력 위에서 성장하는 만큼 그 공적 기여를 외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혁신의 대가를 단순히 분배의 재원으로 환원하면, 혁신하려는 의지와 동기를 꺾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수익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그 수익이 더 큰 혁신과 성장으로 이어지느냐'여야 한다.

◇슈퍼이윤은 생산적 재투자의 원천

역사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준다. 슈퍼이윤을 미래에 재투자한 기업은 절대우위를 구축했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TSMC가 대표적이다. 수익이 생길 때마다 대부분을 차세대 공정 설비에 집어넣은 결과, 경쟁사가 현세대 기술을 겨우 따라잡을 때 TSMC는 이미 다음 세대로 이동해 있었다.'이윤→투자→기술선도→슈퍼이윤'의 선순환이 반복되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사례는 더욱 압도적이다. 인공지능(AI) 그래픽처리장치(GPU) 하드웨어로 벌어들인 수익을 소프트웨어(SW) 플랫폼 쿠다(CUDA)에 20년 넘게 재투자했다. 그 결과 전 세계 AI SW의 대부분이 쿠다 환경에 최적화됐고, 경쟁사 제품으로 갈아타려면 수천만 줄의 코드를 다시 써야 하는 구조적 해자가 만들어졌다.

반면 초과이윤을 쌓아두거나 단기 주주환원에 집중한 기업의 결말은 달랐다. 반도체 산업의 절대강자였던 인텔은 2010년대 차세대 공정 투자를 늦추면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집중했고, 그 사이 TSMC가 공정 기술에서 인텔을 앞질렀으며 엔비디아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선점했다. 인텔의 시총은 엔비디아의 수십 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혁신에 재투자하지 않은 기업은 미래를 스스로 갉아먹는 것과 같다. 슈퍼이윤의 올바른 귀착지는 단기 분배가 아니라 생산적 재투자를 통한 장기 혁신이다.

◇생산적 재투자 : 기업의 결정과 정부의 뒷받침

슈퍼이윤의 생산적 재투자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결정한다. TSMC가 이익이 날 때마다 차세대 공정 설비에 재투자하고, SK하이닉스가 시장이 요구하기 전에 HBM에 베팅했듯, 혁신 투자의 타이밍과 방향은 기업의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다. 그 판단을 외부에서 강제하거나 대신할 수는 없다. 혁신의 대가가 보장될 때 혁신이 일어난다는 슘페터의 통찰을 새겨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판단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영역이 있다. 우리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대외 의존, 대기업 성과의 낙수 단절, 대기업 중심의 인재 쏠림이 그것이다. 우기에 가뭄을 대비해야 하듯, 호황의 한가운데서 이 취약점을 직시해야 한다. 소부장 국산화와 전문 인력 양성은 시급한 과제인데, 이 두 과제는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기업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뒷받침이 결정적이다.

효과적인 모델은 협업이다. 기업이 선제적 투자를 결단하면, 정부는 전력·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적기에 공급하고 세제·연구개발(R&D)·규제 혁신을 한데 묶어 지원해야 한다. 고경력 퇴직 엔지니어들을 중소 기업의 기술멘토로 연계하는 것도 기업과 정부가 함께 설계해야 할 구조다. 이들의 기술과 경험이 해외 경쟁사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국내 생태계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은 개별 기업의 이익인 동시에 국가 기술 안보다. 기업이 결정하고 정부가 뒷받침할 때, 생산적 재투자는 더 큰 혁신과 성장으로 이어진다.

◇혁신의 선순환이 곧 모두가 성장하는 초혁신경제

슈퍼이윤 배분의 문제는 글로벌 이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시스템 전반의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추구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슈퍼이윤이 국민경제 전반의 혁신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흐르도록 제도적 판을 짜야 한다.

분배 논쟁은 제로섬 프레임에 빠지기 쉽다. 누군가 더 가져가면 누군가 덜 가져간다는 논리다. 그러나 혁신은 본질적으로 플러스섬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전체 파이가 커지고, 커진 파이는 더 많은 사람이 수혜를 본다. 혁신의 보상이 보장될 때 혁신적 투자가 발생하고, 사회 전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슈퍼이윤이 생산적 재투자의 동력이 될 때 혁신의 선순환이 이뤄지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현세대와 미래세대 그리고 서울과 지방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할, 모두가 성장하는 초혁신경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art@kiat.or.kr

〈필자〉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해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을 거쳤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2026년 KIAT 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