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확정부지·계속운전 제외…경제성·안전성 등 숙의

정부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확대로 급증할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원자력발전의 역할을 약 3개월간 국민 공론화에 부친다. 당초 10월로 잡았던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정부안 확정 일정도 공론화 이후로 미루되, 신규 원전의 구체적인 기수와 설비용량은 공론화위가 아닌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전기본 위원회가 전력수급·계통 등을 종합해 최종 결정한다.
기후부는 22일 국무회의에 '원전 공론화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약 3개월간 원전 공론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충분히 학습하고 토의하는 과정을 통해 객관적 데이터가 잘 알려지면 좋겠다”며 시민참여단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논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공론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주문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초 10월에 정부안을 확정하기로 했지만 공론화를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3개월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국민 의견을 충분히 듣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공론화 취지를 설명했다. 정부는 12월 중순께 공론화위 권고안을 도출한 뒤 이를 반영해 전기본 정부안을 마련한다.

이번 공론화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단순 찬반으로 결정하는 방식과 차별화한다. AI·첨단산업의 안정적 전력공급과 탄소중립, 경제성, 전력계통 등을 함께 검토하면서 미래 에너지믹스에서 원전이 맡을 역할을 논의한다.
특히, 김 장관은 “(공론화위가) 원전을 몇 개 하자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세부 내용은 12차 전기본 위원회와 기후부의 판단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부지가 확정된 원전이나 설계수명이 끝나 계속운전 절차를 밟고 있는 원전도 이번 공론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들 사업은 법적·행정적 절차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론화위 역시 법적 의사결정기구가 아니라 국민 의견을 모아 정부에 권고하는 성격이다.
기후부는 공론화위를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1명 이내로 구성한다. 원전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를 위촉하고, 원전 찬반 전문가는 별도 전문위원회에서 시민참여단에 필요한 정보와 의견을 제공한다.
시민참여단은 원전과 전력수급에 관한 정보를 학습한 뒤 숙의·토론한다. 전문가 공개토론회와 온라인 의견수렴도 병행한다. 정부는 원전 경제성과 안전성, 사용후핵연료 문제 등도 숙의 과정에서 다룰 방침이다.
김 장관은 고준위방폐장 건설 등 제반 비용을 반영해 원전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다시 산정한 결과 과거 ㎾h당 65원 수준에서 79원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고준위방폐장 후보지를 찾는 절차에는 약 9~1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원전에 별도 공론화 절차를 적용하는 것은 정권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크게 흔들렸던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다.
김 장관은 “우리 사회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둘러싸고 거의 8년간 제로섬에 가까운 게임을 했다”며 “원전을 둘러싼 문제만큼은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갈등을 겪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슨 답을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니다”며 공론화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의 인식과 숙의 전후 변화를 분석해 에너지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