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 관련 직무는 언제 채용하나요?”
자동차 헤드램프와 전동화 부품을 쏟아내는 공장에 앳된 얼굴들이 들어섰다. 지난 28일 경북 경산 에스엘(SL) 진량공장 현장은 작업복 대신 학과 점퍼와 후드티를 걸친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산업통상부가 주최한 '대경권 5극3특 청년 성장이음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북대·금오공대 이공계 학생들이다.
흰 가운으로 갈아입고 위생모를 쓴 학생들은 '로보틱스 랩'으로 향했다. 입구를 지나자 실제 시연 환경을 구현한 테스트장이 나왔다. 로봇의 주행과 동작을 미리 점검하는 곳이다. 이어진 작업 공간에서는 직원들이 자율이동로봇(AMR)을 조립하고 양팔 로봇을 자체 개발한다. 헤드램프로 반세기를 달려온 회사에 로봇 관련 일자리를 묻는 것이 이제는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날 학생들을 맞은 에스엘은 1954년 창업한 국내 자동차 램프 1위 기업이자 5극3특 대경권 성장엔진의 대표 앵커기업으로 꼽힌다. 대구에 본사를, 경산에 주요 생산거점을 두고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5조2399억원을 달성했다. 매출 대부분은 램프에서 나오지만 배터리관리시스템(BMS)·차체제어모듈(SBCM) 등 전동화 부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로봇 사업에서는 현대차 이동형 로봇 '모베드(MobED)'에 라이다 모듈과 BMS를 공급하며 위탁생산을 맡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 4족 보행 로봇 '스팟'의 다리 모듈도 수주했다. 정부가 지난 8월 선정한 대경권 4대 성장엔진 가운데 '첨단 모빌리티 부품'과 '첨단 인공지능(AI) 로봇' 두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셈이다.
정부가 그리는 성장엔진의 핵심은 앵커기업 투자가 협력사 동반성장과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를 위해 앵커기업과 협력사가 컨소시엄을 꾸려 추진하는 성장엔진 대형 연구개발(R&D)을 신설한다. 지방기업은 R&D·통합투자·국내생산 세액공제에서 지역별로 최대 50%까지 추가 공제를 받는다. 정부는 대규모 지방투자에는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을, 성장엔진 기업에는 1조원 규모 우대보증을 지원할 계획이다.
에스엘은 정부의 5극3특 정책에 발맞춰 지역 로봇기업·대학과 손을 잡았다. 대구 성서산업단지 전자공장에서는 포항에 생산·연구 거점을 둔 로봇기업 뉴로메카와 함께 이동형 양팔 협동로봇을 램프용 인쇄회로기판(PCB) 공정에 투입하는 실증에 나섰다. 경북대와는 지역인재 양성 워크숍을 열고 대학-기업 공동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대구·경북이 쌓아 온 자동차 부품·기계·전자 제조 기반을 첨단 모빌리티 부품 육성의 강점으로 본다. 기술 개발과 안정적인 대량 생산을 함께해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관건으로는 기존 제조 공정에 소프트웨어와 전자제어, AI 기술을 접목하고 지역 대학의 연구·교육 역량을 현장과 잇는 일을 꼽았다.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데 더해 지역이 잘해 온 제조업을 고도화하는 데서도 기회를 찾겠다는 구상이다.
지역이 회사 성장에 준 힘으로 '사람'을 꼽기도 했다. 지역에서 배운 인재가 입사해 전문성을 쌓고 그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며 회사를 키워 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전체 임직원의 70%가량이 대구·경북에 자리를 잡았다.
에스엘 관계자는 “청년에게 지역에 남을 이유와 성장할 기회가 있고, 기업은 새로운 도전을 함께할 인재와 파트너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며 “에스엘은 지역의 인재와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성웅 기자 y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