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중소병원 회계기준 적용...정부-업계 팽팽한 대립

[이슈분석]중소병원 회계기준 적용...정부-업계 팽팽한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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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병원 회계기준 적용을 놓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병원이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정부와 행정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중소병원 간 대립이 팽팽하다. 하반기 국회와 정부는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켜 추진을 강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병원 업계는 결사반대를 고수하며 부당함을 호소한다.

의료기관 회계기준 적용은 단순 수입·지출 내역 공개를 넘어 수가 협상을 놓고 원가를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정부와 병원 업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수년간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주장에 실체를 밝혀보자는 정부와 수가 통제를 위한 데이터 확보 전략이라는 병원 업계 주장이 팽팽하다. 일정 규모 병원에 대해 회계기준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한 가운데 부담을 최소화할 정책이 요구된다.

◇의료기관 회계기준 뭘까..설립 대상 상관없이 종합병원급만 적용 대상

현행 의료법 제62조 제2항 및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 제2조에 따르면 직전 회계연도 종료일 기준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은 의료기관 회계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의료기관 설립자가 개인 혹은 법인에 상관없이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의무 적용이다.

적용대상 의료기관은 회계기준 규칙 제4조에 따라 병원 재무상태와 운영성과를 나타내기 위해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기본금변동계산서 △현금흐름표 등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제무제표 세부작성방법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해 고시한다.

또 의료기관기준 규칙상 주석 기재 사항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유형자산 과목별 감가상각방법·내용연수 △주차장·매점·일반식당·장례식장 직영수익 △의료사고 처리 수수료 △고유목적별사업준비금 사용내역 △의료수익 삭감내역 등이 포함된다.

현행 법·규칙에 따라 설립자가 개인인 종합병원은 의료기관 회계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적용 세법은 소득세법을 따른다. 설립자가 법인인 종합병원 역시 회계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적용 세법은 법인세법이다.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은 따르되 100병상 이상이지만 병원급이면 적용 대상이 아니다.

◇맹성규 의원 개정안 발의..100병상 이상 병원급도 적용 추진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은 의료기관 회계기준 적용 대상을 현행 종합병원에서 일정 규모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확대, 회계관리를 강화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세부규칙에 제시할 계획이지만 100~300병상 병원급으로 확대하는 것이 유력하다.

개정안 발의는 의료기관 회계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일반 병원급 의료기관 회계자료는 비교, 수집이 불가능해 의료기관 전반 수익구조 분석과 정확한 수가 산정이 어려운데 따른 것이다.

실제 회계기준이 적용되는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은 2018년 기준 353개소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3924개의 8.9%에 불과하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이 빠지면서 국내 병원 전반의 경영정보 수집이 어려운 현실이다. 이 같은 문제는 국회예산정책처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맹 의원은 “중소병원 재무상태와 경영수지 분석이 어려워 정책 수립에 애로사항이 있다”면서 “해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본, 독일은 모든 병원에 병원 회계 자료 제출 의무를 명시해 병원 회계 투명성 제고와 합리적인 수가 결정 등에 이용 중”이라고 법안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1400개가 넘는 병원급 의료기관 경영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회계 투명성 강화, 정책 입안 근거 데이터 확보 차원에서 회계기준 적용은 불가피하다는 게 국회, 정부 주장이다. 특히 병원 업계가 꾸준히 문제제기한 '비현실적 수가 현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가 산정과 병원 수익 구조를 파악해야 하는데 관련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책 마련이 쉽지 않다.

맹성규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을 하반기에 관계 부처와 논의해 통과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병원 결사반대, “정부 수가 통제 목적”

중소병원인 병원급 의료기관은 국회·정부 움직임에 강력 반발한다. 표면적으로는 회계업무를 가중시켜 경영에 타격을 준다는 게 이유다. 투명성 제고와 합리적 수가 결정을 이유로 드는 정부와 국회 주장도 말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강봉수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은 “회계기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현재 회계자료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게 돼 있다”면서 “병원도 일종의 사기업인데 회계기준을 일률적으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현재 병원 경영정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청구, 국세청 세금신고 등으로 파악 가능한 상황에서 회계기준까지 의무화할 경우 이중 부담이 된다는 입장이다. 이미 저수가, 최저임금 인상, 간호등급제 등 경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회계업무 부담까지 늘어 생존조차 어렵다고 호소한다.

내면에는 정부와 병원 간 수가 이슈가 얽혀있다. 정부는 매년 병원에 지급하는 수가를 업계와 협상한다. 병원 업계는 정부가 정한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아 병원 경영 악화와 의료 서비스 질이 하락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병원 수익, 지출 구조를 파악해 원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본다. 원가 산정에 따라 수가 인상 폭을 결정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업계는 원가파악에 따른 수가산정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병원은 최소한 수익을 내는 선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흑자를 내고 있는데, 이것만 봐서 정부는 수가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회계 투명성은 명분일 뿐 병원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파악해 저수가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게 목적”이라면서 “병원은 수입에 몸집을 맞춰 간신히 흑자를 내고 있는데, 이럴 경우 정부가 원한 저수가가 아니라는 점이 증명돼 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병원 운영 과정에 대출은 필수인데, 이를 위해서는 적자여도 어쩔 수 없이 흑자를 기록했다고 해야 대출이 가능하다”면서 “이런 지표가 원가파악이나 수가산정에 활용될 경우 문제가 되는데, 중소병원 현실을 외면한 정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병원급 회계기준 적용 필요 목소리..부담 줄일 대책 마련

전문가들은 중소병원 현실은 이해되지만 회계기준 적용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기간에 추진할 경우 중소병원이 받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시점과 범위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조완석 태성회계법인 상무는 “병원급 의료기관은 일반 급여의 경우 상대적으로 투명한 상황이지만 비급여 항목이나 기타 보험에서 오는 현금 매출과 경비는 제각각이라 통일해야 이해하기 쉽다”면서 “회계기준 적용은 동일한 기준으로 동일하게 경영정보를 들여다보겠다는 건데 병원 회계 투명성 제고는 물론 환자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회와 논의해 하반기에 개정안 통과에 주력한다. 중소병원 입장에서 회계업무가 늘어나고 전산시스템 개편 등 부담도 적지 않다. 회계 전문가 고용도 어려운데다 외부 회계기관에 위탁하는 것 역시 비용이 많이 든다.

이를 고려해 300병상부터 100병상까지 단계적으로 적용을 검토한다. 이 가운데 중소병원을 대상으로 회계 교육과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 방안까지 고려한다.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팀장은 “병원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되 중소병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서 “병원업계가 저수가 등으로 어렵다고 하니 이를 해소할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목적이며, 현재 회계 기준을 적용한 종합병원도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추후 중소병원까지 확대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