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41>한국과학원법 국회 통과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이 1970년 5월 22일 열린 과학기술처 특별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이 1970년 5월 22일 열린 과학기술처 특별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70년 5월 4일. 과학기술처는 전문 20조의 한국과학원(현 KAIST) 법안을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했다. 과학기술처는 법안 제안 이유로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과학원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한국과학원 법안을 5월 13일 국회에 제출했다.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는 첫 계단이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는 7월 14일, 16일 각각 위원회를 열고 법안을 심의했다.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법안은 정부 내에서도 부처 이견이 심했고, 특히 한국과학원생의 병역특례 조치는 대통령이 최종 결단을 내릴 정도로 국방부와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이었다.

국회가 이를 그냥 넘길 리 없었다. 과학기술처도 최고 두뇌 유치로 과학기술 강국을 구현하려면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었다. 예상한 대로 상임위에서 국회의원 질의는 구체적이고 매서웠다. 과학기술처 김기형 장관과 이재철 차관은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참석해 의원들 질의에 소상히 답변했다. 7월 14일 오후 2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장. 김재순 위원장(전 국회의장)이 위원회 개회를 선언하고 한국과학원 법안을 상정했다. “한국과학원 법안을 상정합니다. 과학기술처 장관이 나와서 제안 설명을 하시기 바랍니다.”

김기형 장관이 연단으로 나가 한국과학원 법안 제안 설명을 했다. 이어 전문위원이 법안 심사보고를 했다. 곧바로 국회의원 질의가 쏟아졌다. 기존 대학 교과와 한국과학원 교수 자격 차이, 한국과학원 주무장관이 과학기술처 장관인 이유, 문교부와 한국과학원 관계, 한국과학원생 병역특례 조치의 타당성 여부, 과학원 부지 문제, 과학원을 특수법인으로 해야 하는 이유, 과학원을 위한 정부의 무상 대여 문제, 교수 임용, 회계감사 여부 등 그야말로 업무 전반에 관해 질의했다. 일부 의원은 “법안을 졸속으로 처리하지 말고 심의를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김기형 장관은 의월들 질의에 차분히 답변했다. “한국과학원 교육 과정과 학교 운영 등에 관해서는 문교부와 협의했고, 병역특례 조치도 국방부와의 협의를 완료했습니다.” 이틀 후인 7월 16일 오전 9시 국회 법제사업위원회장. 군 장성 출신이 2명이나 되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한국과학원생 병역특례 조치를 놓고 정부 입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육군 준장 출신인 노재필 위원장이 개회 선언을 하고 법안을 상정했다. “과학기술처 장관께서 법안 제안을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김기형 장관의 제안 설명이 끝나자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나서서 교육부와의 업무 관계, 병역특례 조치, 감사원 감사 여부를 놓고 조목조목 따졌다. 이 가운데 병역특례 조치에 대해 법제처 법제관과 군 법무관을 거쳐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고재필 의원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

고 의원과 김 장관의 병역특례 질의·답변 내용을 보자.

◇고재필 의원=한국과학원생에 대한 병역특례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들에게 특례 조치를 하면 다음에는 다른 분야 사람에게도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 나올 겁니다. 나중에는 권력층도 혜택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입대해서 총을 들고 국가를 위해 싸우겠습니까. 나는 이런 내용의 법안에 반대합니다.

◇김기형 장관=(정근모 박사가 제안한 내용과 정 박사-해너 총장 관계, USAID 제안을 받아 정부가 진행한 과정 등을 소상히 설명했다) 병역특례는 인재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일본도 노벨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미국 자금을 지원받아서 설립하는 기술원에 가능하면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종래 교육제도와 다른 특수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문교부와 협의해서 추진하는 것입니다.

◇고재필 의원=병역 문제는 지난해 9월 대통령께서 위반자에 대해 강한 조치를 한 바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은 물론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국민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병역의무는 모두에게 평등해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법으로 과학원생에게 병역특례를 준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김기형 장관=병역특례에 관해서는 지난 1월 14일 대통령 각하의 과학기술처 초도 순시 때 제가 대통령 각하께 '한국 이공계 수재, 특히 극소 분야에 대해 병역 특혜를 주어서 단기간 복무하고 계속 공부하도록 하면 과학기술을 조속히 증진시킬 수 있다'는 건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당시 찬성하셨습니다. 과학원생에게 병역특례는 병역의무를 모두 면제하는 것이 아니고 단기간 복무토록 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120일이면 120일, 100일이면 100일 병역법에 규정한 단기 복무 혜택을 주고 복무가 끝나면 다시 기술원으로 돌아와 연구하고 공부해서 국가에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날 질의에는 법사위원 8명이 차례로 나서서 김기형 장관을 상대로 병역특례 조치와 과학원 교과 등에 관해 질의했다. 질의가 1시간 이상 계속되자 노재필 위원장이 나섰다. “이미 재경위원회에서도 같은 문제를 논의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학원 법안에 대해서는 법사위에서 수정할 점은 수정하고 나머지는 정부안대로 통과시키고자 합니다. 자구 수정과 조문 정리는 위원장에게 일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의 없으시면 통과를 선언합니다.”

한국과학원 법안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과학기술처 관계자의 말. “애초 법안의 주요 내용 중 '한국과학원은 과학기술처 장관이 정관을 작성해서 문교부 장관 승인을 얻어 설립하도록 한다'로 돼 있었습니다. 승인은 허가나 허락의 의미입니다. 같은 국무위원이 다른 국무위원의 허락을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승인을 얻는다'를 '동의를 얻는다'로 수정했습니다. 그러나 박사 학위는 사전에 문교부 장관 승인을 받아 과학원장이 수여하도록 했습니다.”

국회는 이 법안을 7월 16일 열린 제74회 임시 국회에 상정했다. 이효상 국회의장이 이날 오후 9시 개회를 선언했다. “한국과학원 법안을 상정합니다. 재정경제위원회 간사인 김유탁 의원이 나와 심사 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유탁 의원이 단상으로 나와 법안 심사 결과를 보고했다. “우수한 과학기술 영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은 기술혁신 원동력입니다. 특히 우리처럼 자본과 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과학기술 전략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인재를 집중 양성해야 합니다. 재정경제위원회는 2차와 3차 회의에서 논의한 끝에 한국과학원 법안을 정부안대로 통과시켰습니다. 상임위원회에서 심의한 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효상 의장이 의원들을 향해 물었다. “이 법안을 정부안대로 가결하고자 합니다. 이의 없습니까?” “이의 없습니다.” “그럼 원안대로 가결을 선포합니다.” 국회는 이날 통과시킨 법안을 7월 28일 정부로 이송했다. 정부는 8월 7일 법률 2220호로 이 법안을 공포했다.

정부가 공포한 한국과학원법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국과학원은 법인으로 하며, 과학기술처 장관이 정관을 작성해서 문교부 장관 동의를 얻어 설립한다. △한국과학원의 설립 등기와 기타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며, 15인 이내 이사와 2인 이내의 감사를 둔다. △한국과학원 설립과 시설 건설,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는 출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출연금 교부와 사용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또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양여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 △한국과학원에 원장과 부원장, 교수 등을 두고 학위 과정은 박사와 전문석사, 석사과정을 두되 한국과학원이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자 할 때는 문교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전문석사 또는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문교부에 등록해야 한다. △정부는 한국과학원 학생에 대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에 관한 특별조치를 할 수 있다 등이다. 한국과학원법의 국회 통과는 끝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이후 한국과학원 설립을 일사천리로 추진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