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 스타트업, 분자가 아닌 분모를 혁신하자

[GEF 스타트업 이야기] 스타트업, 분자가 아닌 분모를 혁신하자

시장 선택전략에서 국내 마케팅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전설적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노비드 샴푸다. 노비드는 비듬방지 샴푸로 포지셔닝돼 마트에서 팔리면서 대히트한 LG생활건강의 효자상품이다. 반면에 유사한 기능의 해외 유명 경쟁사 제품은 비듬제거 샴푸로 포지셔닝, 약국에서 판매됐다. 이 두 제품의 경쟁은 시작점에서부터 승자와 패자가 명확히 나뉘는 게임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비드의 시장 선택이 매우 당연하고 쉬워 보이지만 사실 기업이 진입하려는 시장 영역을 선택할 때는 쉽지 않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 비듬제거 기능성 샴푸인 노비드도 타기팅되고 세분화된 비듬제거 샴푸 시장에 진입하려는 유혹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마케팅 교과서나 심지어 사업 경험이 적은 투자자·컨설턴트·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진입 시장은 대부분 분자(分子, 목표시장)가 작은 진입 시장을 우선 추천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트업에도 분자가 큰 사업은 매력적이지 못할 수 있다. 대기업이나 전통적 산업 생태계가 이미 구축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분화한 시장, 타기팅된 시장, 니치마켓에 진입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 초기 사업계획 단계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라거나 틈새시장을 노리라는 주문을 많이 받게 된다. 사실 노비드도 LG라는 뒷배가 있었기 때문에 비듬제거라는 작은 시장보다는 비듬방지라는 큰 시장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시장에 새로운 룰을 만드는 시대가 왔다. 단연코 지금은 스타트업이 틈새시장, 즉 어려운 시장에서 승부를 겨룰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드는 시장에 틈새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가 대기업을 제치고 성공한 것임을 복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영역이 열리는 시장에는 굳이 극 타깃 층을 노릴 필요도 없다. 대표적으로 펫산업, 헬스케어 산업, 디지털치료제(DTx) 산업처럼 새로이 열리는 시장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사업군에는 대기업도 구글 같은 중개 플랫폼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던 산업 데이터도 부족한 건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마디로 경쟁사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룰이 만들어지는 이 시장은 기득권 기업이 들어오기에는 리스크가 크고, 계륵과 같은 회색 영역 시장이며, 비즈니스 모델이 불확실한 특징이 있다. 이미 대기업화된 혁신형 기업 카카오나 네이버마저도 기존 성공 요인을 중심으로 확장하기 때문에 새로운 게임에서는 선도주자가 되기 어렵다. 한마디로 새로운 게임 룰이 지배하는 시장에는 선배기업들의 시장 전개 전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제 타깃 마케팅, 극 타깃 층, 틈새시장은 기존 기업들의 생존전략이지 스타트업 생존전략은 아니다. 10년 넘게 스타트업 심사를 하다 보면 필자가 매우 우수하다고 선택한 기업들은 항상 3등 정도에 머무른다. 조금만 리터치하면 크게 될 아이템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내가 그만큼 보는 눈이 없거나 감각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타 심사위원들과 나와의 관점 차이점을 알게 됐다. 바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한 틈새로서의 가치로 기업을 보느냐 새로운 게임 룰을 만들 수 있는 기업으로서의 가치로 스타트업을 보느냐의 차이였던 것 같다.

이제 당당히 말하고 싶다. “스타트업에 분자는 혁신이 아니다. 분모가 혁신이어야 한다.” 기존 시장에서의 분자 혁신은 대기업이나 기존 기업의 몫이다. 스타트업은 분모에 혁신을 둬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게임 룰을 창출해 내는 스타트업만이 유니콘 기업으로 될 수 있다. 내가 만든 게임 룰에서 승자가 돼야 한다. 바둑 시장에서는 오목 게임, 오목 시장에서는 알까기 게임을 만들어 보자. 알까기 게임에 사회적 의미를 주입하고, 보상을 제공하며, 팬덤을 일으킨다면 새로운 분모 영역이 창조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 스타트업의 생존전략이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