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종전 합의로 국제 유가·환율이 급락하며 전쟁 기간 원재료 수급난·대외 리스크에 시달리던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공급망 안정화와 중동 교역 재개에 속도가 붙게 됐다.
1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종전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 해상 봉쇄가 해제됨에 따라 그간 차질을 빚었던 나프타 등 의약품 기초 원료 공급망이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의료용 플라스틱·수액백·주사기 등의 핵심 원재료인 나프타는 국내 수입 의존도 약 45% 중 77%가 중동산으로, 올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필수 의료제품 생산에 비상이 걸린 바 있다.
정세 안정을 계기로 중동 의약품 시장 수출과 현지 진출도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완제의약품 국내 기업 중동 수출액은 6억830만달러(약 9209억원) 규모다. 원료의약품·의료기기 등 전체 보건의료 품목을 합산한 실제 교역액은 이보다 크다.
완제의약품 국가별 수출 비중은 △튀르키예(64.8%) △사우디아라비아(8.9%) △이라크(5.4%) △아랍에미리트(5.0%) △요르단(4.2%) △이집트(4.1%) △이스라엘(2.4%) △이란(0.9%) 등 순이다.
중동으로부터의 수입은 총 4억6528만달러(약 7038억원)다. 이 중 튀르키예(95.1%)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그간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통제로 이들 국가와 교역 물류망에 차질을 빚었으나, 종전 합의로 수출입 교역이 빠르게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일 금융·원자재 시장은 양국 협의를 즉각 반영했다. 전쟁 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국제 유가는 종전 합의 발표 직후 WTI 80달러, 브렌트유 84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브렌트유 기준 3개월여만에 최저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7원 내린 1511.1원에 마감하며 안정세를 보였다.
다만 시장지표 안정이 곧장 실물 공급망 정상화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휴전 이후에도 배럴당 90달러 이상 고유가가 일정 기간 유지될 것으로 봤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상승하고 물가상승률은 0.2%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쳐, 실질 회복 효과는 점진적일 것으로 추정했다.
거시적 우려에도 업계는 종전이 공급망 정상화·현지화 재개 모멘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현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산업혁신본부장은 “중동 긴장 완화는 해상 물류와 원료 수급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수액백 등 필수 의료제품 생산 여건을 개선할 것”이라며 “중동 정세 안정은 보건 의료 투자 확대와 맞물려 제약·바이오 기업의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 역시 “업계가 고유가·고환율·고금리 3고 위기와 공급망 붕괴 위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간 고금리 여파로 후기 단계에만 집중되던 투자 자금이 초기 단계로 유입되는 발판이 마련되고, 잠정 중단됐던 국내 바이오 기업 중동 현지화 사업도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전 합의 공식 서명은 이달 19일이다. 향후 60일 핵 협상이 실물 공급망 정상화를 가를 최종 분수령이다.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